매일신문

[우리 시조로 푼 한시] 落照 (낙조) / 기은'어사 박문수

나루터 묻는 길손 말채찍이 급하고

불과 260년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어사가 존재했다. 세월이 흘러도 그가 남긴 자취는 넓고도 크다. 가는 곳마다 의를 중시했고, 약자들의 편에 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사만 나타나면 산천초목도 무서워 벌벌 떨었다는 일화는 물론 설화까지 남겼다. 어사의 등과시에 대한 일화는 우리가 잘 알고 있지만, 어사가 자연을 보며 절절하게 묘사한 것을 보면 그의 시적 감성에 놀라게 된다. 지는 저녁 노을을 보며 상상하며 읊었던 율시 전구 한 수를 번안해 본다.

지는 해 푸른 산 걸려 붉은 빛 토하더니

찬 하늘 까마귀는 흰 구름 속 사라진다

말채찍 길손의 손 급하고 스님 지팡이 바쁘네.

落照吐紅掛碧山 寒鴉尺盡白雲間

낙조토홍괘벽산 한아척진백운간

問津行客鞭應急 尋寺歸僧杖不閒

문진행객편응급 심사귀승장불한

【한자와 어구】

落照: 지는 해. 吐紅: 붉은 빛을 토하다. 掛碧山: 푸른 산이 걸려 있다. 寒鴉: 찬 하늘 까마귀. 尺盡: (자질하며)사라진다. 白雲間: 흰 구름 사이. // 問津: 나루터를 묻다. 行客: 길손. 鞭應急: 말채찍이 급하다. 尋寺歸: 절을 찾아 돌아오다. 僧杖: 스님의 지팡이. 不閒: 한가롭지 않다, 곧 바쁘다.

'나루터 묻는 길손 말채찍이 급하고'(落照)로 번역해본 율(律)의 전구인 칠언율시다. 작자는 기은(耆隱) 박문수(朴文秀'1691~1756)로 '어사 박문수'로 잘 알려져 있다. 기은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백성을 위한 바른 정치가로도 유명하다. 그가 과거를 보는 과장에서 썼던 답안문장으로 일명 등과시(登科詩)로 알려진다. 위 한시 원문을 번역하면 '지는 해가 푸른 산에 걸려 붉은 빛을 토하고/ 찬 하늘에 까마귀는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 나루터를 묻는 길손은 말채찍이 급하고/ 절로 돌아가는 스님도 지팡이가 바쁘구나'라는 시상이다.

이 시제는 '서산을 넘는 저녁노을'로 번역된다. 글쓴이가 과거를 보러 가다가 날이 저물었다. 주막에 머물러 잠을 자는데 꿈에 한 젊은이가 나타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면서 이번 과제와 1~6구까지 답안을 일러 주었다. 과연 그가 과장에 나갔더니 젊은이가 일러준 대로 기억되어 답안을 쓰고 7, 8구는 생각해 완성했고 병과(3등)로 합격했다.

시인은 지는 해가 붉은 빛을 토해내고 까마귀가 흰 구름 사이로 사라진다고 시심을 일으킨다. 나루터를 묻는 길손의 채찍과 절을 찾는 스님의 발길이 급하다고 했다.

화자는 낙조의 그림을 그리는 데 부족함이 없는 시심을 상상해냈다. 후구로 이어지는 시인의 상상력은 '놓아먹인 풀밭에 소 그림자가 길고/ 망부대 위엔 아내의 쪽 그림자가 나지막하구나// 개울 남쪽길 고목은 푸른 연기가 서려 있고/ 더벅머리 초동이 피리를 불며 돌아오고 있구나'라고 했다. 초동이 피리를 불면서 돌아오는 그림도 그린다.

박문수(1691~1756)는 조선 후기 문신이자 정치가다. 자(字)는 성보(成甫), 호(號)는 기은(耆隱)이며 시호는 충헌(忠憲)이다. 1723년(경종 3년) 문과에 급제해 사관이 됐다. 이듬해 설서(說書)'병조정랑에 올랐다가 1724년(영조 즉위년) 노론이 집권할 때 삭직됐다.

1727년에는 정미환국으로 소론이 기용되자 사서에 등용돼 '영남안집어사'로 나가 부정한 관리들을 적발했고, 이듬해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사로도순문사 오명항(吳命恒)의 종사관으로 출전해 전공을 세워 경상도 관찰사에 발탁됐다, 분무공신 2등으로 영성군(靈城君)에 봉해졌다. 1730년 참찬관에 이어 호서 어사로 나가 굶주린 백성 구제에 힘썼으며, 1738년에 동지사(冬至使)로 청나라에 다녀왔으나 앞서 안동서원을 철폐시킨 일로 탄핵을 받아 풍덕(豊德) 부사로 좌천됐다. 암행어사의 전형으로 잘 알려져 있으나, 그와는 달리 실제로 임금으로부터 암행어사로 임명된 적은 없으며, 별견어사로만 4번 파견됐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장희구(한국한문교육연구원 이사장'시조시인'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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