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세상을 비추는 스크린] 만화적 상상력 넘쳐흐르는 어른동화

이번 주 영화 흥행 기록을 살펴보면, 노아의 방주에 대한 색다른 해석으로 논쟁을 일으키고 있는 '노아'가 1위를 차지하고 있고, 2위는 '우아한 거짓말'이다. '우아한 거짓말'은 작게 시작하여 2주일 만에 100만 관객을 모은 저력을 보여준다. 다음으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할리우드 액션 블록버스터 '논스톱'과 '300: 제국의 부활'을 제치고 3위에 올랐다. 상영 영화관 수가 '노아'의 6분의 1 규모로 작게 개봉했고, 슈퍼스타급 배우가 없으며, 소수의 마니아 관객이 좋아하는 감독임을 감안하면 이 영화의 의미 있는 선전에 눈이 간다. 스타일과 이야기가 개성으로 똘똘 뭉쳐진 사랑스러운 영화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대해 알아보자.

영화의 플롯은 삼중의 액자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때는 현재, 한 소녀가 동상 앞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라는 소설책을 펼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작가는 관객을 향해 그가 소설로 완성했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1980년대를 회상한다.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가상의 국가 주브로브카 공화국, 과거 전설적인 호화 호텔이었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지금은 파리 날리는 초라한 곳이 되었다. 젊은 작가는 어느 날 호텔 주인인 제로의 경험담을 듣게 된다. 1930년대를 배경으로 호텔 로비보이 제로는 지배인 구스타브와 기이한 모험을 한다.

세계대전이 시작되는 시기의 어느 날, 세계 최고 부호인 노파 마담 D(틸다 스윈튼)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 다녀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의문의 죽임을 당한다. 그녀는 유언을 통해 가문 대대로 내려오던 명화 '사과를 든 소년'을 연인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 앞으로 남긴다. 마담 D의 유산을 노리고 있던 아들 드리트리(애드리언 브로디)는 구스타브를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하고, 구스타브는 누명을 벗기 위해 국경을 넘는다.

예술과 낭만의 시대가 종결되고, 전쟁과 대학살, 나치즘이 기승을 부리던 불안한 유럽을 상징하듯이 화려하던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쓸쓸하게 퇴색되었다. 영화 속 호텔은 역사의 소용돌이를 관찰하는 또 하나의 캐릭터이다. 세트 미니어처를 만들어 호텔에 위치한 광활한 알프스 산맥을 카메라로 길게 이어서 촬영하는 감독 특유의 촬영기법이 펼쳐지고, 호텔 내부는 아기자기한 소품들로 꽉 차고 알록달록하게 꾸몄다.

이 미국 영화는 올해 베를린국제영화제 개막작이었으며 심사위원 대상을 수상한 수작이다. 정치색이 짙은 영화를 선정하기로 유명한 베를린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그간 개막작 중 가장 유쾌한 영화라는 평가를 받았다. 감독은 웨스 앤더슨. 그는 진 핵크만, 벤 스틸러, 기네스 팰트로가 주연한 '로얄 타넨바움'과, 애드리안 브로디, 오웬 윌슨이 주연한 '다즐링 주식회사'로 국내에 알려졌다.

앤더슨은 늘 어디론가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이 펼치는 황당무계한 코미디를 만든다. 그의 영화들은 미학적 색채가 모두 비슷하다. 하나하나 꼼꼼하게 만들어진 소품과 세트, 원색으로 이루어진 환상적인 컬러감, 비현실적인 캐릭터와 대사, 건조한 유머, 상처 입은 사람들에 대한 슬픈 묘사, 장르의 규칙에 따른 고안된 플롯 등은 웨스 앤더슨표 세계를 이루는 요소들이다. 그는 같은 배우, 같은 스태프들과 일하고, 주인공들은 최상위 부유층이거나 노동자 계층이다. 유니폼을 입은 인물들이 매번 등장한다. 그리고 완벽한 좌우 대칭을 이루는 화면 구도를 유난스럽게 고집한다. 그의 영화들은 하나같이 '영화적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야기는 과장되어 있고, 어떨 때는 논리를 비켜나간다. 난잡하게 흩뜨려 놓은 이야기 줄기는 우연하게 봉합되거나 슬그머니 없어지기도 한다. 앤더슨의 영화를 감상한다는 것은 그만의 만화적 상상력과 스타일을 즐기는 것이다.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스타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간, 이 시대에 만나기 힘든 영화 장인의 힘이 놀랍고 재밌기만 하다.

해체된 가족에 대한 묘사가 슬프다가도 도피적으로 여겨지지만, 정말로 영화적인 순수한 환상적 즐거움을 얻고 싶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그들이 아무리 괴로워할지라도 결국 모든 게 잘될 것임을 알기에, 끝까지 애써 고통스럽게 영화를 감상할 필요가 없다는 점도 앤더슨 영화의 또 하나의 매력이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