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미얀마 의료봉사 6박7일의 기록…입술 뭉개진 아이들 새 얼굴을 얻다

하루 10시간 수술 강행군

'진정한 행복은 소유가 아니라 나눔이다.'

누구나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문장이지만 이 가치를 삶에서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이 문장을 최고 가치로 삼고 전 세계를 누비는 의료진이 있다. 본지 취재진은 6박 7일간 미얀마에 머물렀던 의사 봉사모임인 '인지(인도차이나)클럽'의 따뜻한 손길을 기록했다.

◆첫날부터 장사진 이룬 환자들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의 '양곤종합병원'(Yangone General Hospital). 3월 10일, 미얀마에 도착한 수술팀이 여장을 풀어놓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이 바로 이 병원이다. 이날부터 수술 예정인 환자들의 진료가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수술팀을 태운 버스가 '성형 악안면 구강외과'(Plastic Maxillo Facial & Oral Surgery Department)라고 적힌 건물 앞에 멈춰 섰다. 병원은 낡았다. 벽에 덧칠한 페인트는 군데군데 벗겨졌고, 병실 안 환자들은 천장에 붙은 대형 선풍기 한 대로 더위를 쫓아낼 수 없다는 듯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하지만 겉모습으로 병원의 수준을 판단하면 곤란하다. 1899년 영국 식민지 시절 설립된 양곤종합병원은 미얀마 최대의 공립병원이다. 응급실은 물론 1천500개에 달하는 침상을 갖추고 있어 전국에서 몰려온 환자들로 항상 만원이다. 또 양곤의과대학과 연계돼 있어 우수한 의료진들이 많다.

오전 8시도 안 돼 병원에 도착했지만 진료실 입구에는 한국 의료진을 기다리는 보호자와 환자들로 만원이었다. 대부분 구순구개열 환자였지만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없는 환자들도 많았다. 얼굴이 앳된 엄마 한 명이 코가 두 개 달린 아이를 품에 안고 진료실로 들어왔다. 결과는 '수술 확정'. 그제야 아이 엄마의 얼굴이 환해졌다. 입술이 뭉개진 아기 환자도, 곰이 얼굴을 물어서 표정이 일그러진 40대 남성도 있었다. 이렇게 35명이 최종 수술 명단에 올랐다.

◆빡빡한 수술, 의술도 전수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수술이 시작됐다. 오전 8시부터 오후 6시가 넘도록 쉬지 않고 수술이 이어졌다. 한인식당에서 배달한 김밥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바로 수술실로 복귀하는 빡빡한 스케줄에 기자도 덩달아 바빠졌다. 이처럼 빠르고 안전한 수술이 가능한 데는 마취과 의사의 역할이 크다. 경북대병원 마취통증의학과 김시오 교수와 같은 병원 마취통증의학과 정훈 전문의는 환아를 안고 쉴 새 없이 수술실과 회복실을 오갔다.

인정 많은 한국 의사들은 빡빡한 수술로 바쁜 와중에 현지 의대생들에게 '의술'을 전수하기도 했다. 양곤종합병원 연계 대학인 양곤의대 학생들은 수술을 참관하러 매일 수술실을 찾았다. 미얀마 의대는 7년 과정이다. 5년 6개월간 학교에서 공부하고, 나머지 기간은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해야 의대를 졸업할 수 있다.

의대생들은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성형외과 유대현 교수가 구개열 환자를 수술하는 모습을 유심히 살펴봤다. "여기서 외과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 외과의는 양손을 써야 합니다. 상황에 따라 왼손과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수술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요." 유 교수는 수술 전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했다.

젊은 의학도들도 느낀 바가 많다. 이날 수술실을 찾은 양곤의대 5학년 통 민앙(Hton Min Aung'21) 씨는 "병원 수술실에서 해외 의료진이 수술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미얀마 환자들을 돕기 위해 멀리 한국에서 온 의사들이 존경스럽다. '좋은 의사'란 어떤 사람인지 진지하게 생각할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미얀마 양곤에서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봉사하는 의사들의 모임 '인지(인도차이나) 클럽'

인지클럽은 전국 병원에서 모인 성형외과, 마취과, 치과 전문의들로 구성된 민간 의료봉사단이다. 언청이라고도 불리는 구순구개열 환자들을 무료로 수술하기 위해 국제의료구호단체인 '글로벌케어'와 함께 매년 동남아 국가를 찾고 있다. 인지클럽 멤버들은 약 20년간 매년 베트남과 라오스를 찾아 수술했고, 올해 처음으로 미얀마를 찾았다. 미얀마에 온 수술팀은 '소수정예'다. 성형외과와 마취과 전문의 각각 5명과 2명, 간호사 3명과 성형외과 전공의 2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됐다.

◇구순구개열 환자 많은 미얀마

미얀마는 의사가 귀한 나라다. 전국에 있는 의과대학은 총 4개로 그중 두 곳이 양곤에 있다. 인구 6천만 명 규모의 국가에서 환자 수에 비해 의사가 턱없이 부족한 이유다. 현지 의료진들은 "의대를 더 만들고 싶어도 학생들을 가르칠 만한 교수진이 부족해 숫자를 더 늘릴 수 없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래서 이 나라에는 수술 적기를 놓친 구순구개열 환자가 많다. 지난해 베트남 수술팀에 합류했던 경북대병원 성형외과 조병채 교수는 "베트남에 비해 1차 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별로 없다. 구순열(입술 갈라짐)은 3개월, 구개열(입천장 갈라짐)은 12개월 때 1차 수술을 하는 것이 적기다. 하지만 미얀마에는 6~24개월까지 수술을 한 번도 받지 않은 어린 환자들이 많다"고 안타까워했다.

구순구개열은 수술 '시기'가 아주 중요하다. 수술 적기를 놓치면 구순열은 흉터가 진하게 남고, 구개열은 언어 발달이 느려진다. 조 교수는 "구순열은 모체 호르몬이 있을 때 수술해야 흉터가 덜 남는다. 또 구개열은 12개월을 넘겨 수술하면 말을 배우는 나이에 언어 발달이 느려져 발음에 문제가 생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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