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나윤희의 아담한 이야기] 공간, 그 유연한 해석

"자유로운 출퇴근, 자유로운 사무 공간, 생각만 해도 멋져요."

"그렇게 해서 절약한 시간을 일을 위해 쓰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요?"

어느 날 점심 후 직원들과의 티타임 때 이런 말을 들었다.

통계를 보니 한국인은 출퇴근하는 데 평균 62분을 쓴다고 한다. 길 위에 버려지는 시간을 아끼기 위해 사무실 아닌 자유롭게 원하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성과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이야기와 함께였다. 언론인 마르쿠스 역시 '출퇴근'과 '사무실'로 대표되는 사무직에 대한 고정관념이 업무 능률을 떨어뜨리는 주범이라고 지적했다.

덧붙여 그는 쾌적하고 분위기 좋은 사무실 환경은 직원을 회사에 더 머물게 하려는 방법에 불과하다고도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자유롭고 독립적인 생활과 언제 어디서나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이지 이코노미'(easy economy)를 주장한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옳을까? 곳곳이 사무실이 될 수 있다는 자유로움 속에는 모든 순간들이 일과 구분이 흐릿해져 버릴 수 있다는 아이러니가 씁쓸하게 남는다.

20대 중반, 창업을 준비하던 내게 가장 간절했던 것은 나만의 작업 공간 확보였다. 짧은 직장 경력, 치기 어린 열정, 재활용센터에서 갖고 온 낡은 책걸상 몇 개가 가진 것 전부였던 첫 작업공간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겹다. 처음 일주일 내내 눈을 뜨면 벽과 책걸상에 페인트칠하는 것이 나의 일과였다. 그때 처음 알았다. 매끈한 흰색이 되려면 몇 번의 덧칠과정이 필요함을. 공간 정리의 끝이 보이던 어느 날 밤, 나는 한동안 꺾여 있던 허리를 폈다. 작은 창 너머 초승달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까만 밤하늘에 도도하게 빛나는 달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저렇게 창문 너머에 달이 걸릴 때 이 작업공간에서의 하루를 접으리라.'

손톱 같은 초승달이 차올라 보름달이 되고, 그것이 다시 초승달이 되어가기를 반복하는 그 숱한 밤들을, 나는 초심을 활활 불태우며 일속에 묻혀 살았다. 그러나 그 무렵, 그 하얀 사각 공간 안에서 이뤄지는 모든 것들에는 긍정적인 기운이 있었다. 다만, 이렇게 긴 세월 '워커홀릭'으로 이어질 줄을 몰랐다는 사실을 제외하고는.

세월이 흘러 우리만의 독립된 작업 공간을 갖게 되었다. 작은 마당, 오가는 계절이 느껴지는 작은 정원, 각자 자기 공간이 확보된 작업실…. 마르쿠스의 말처럼 직원들을 붙잡아놓는 술책으로 이러한 공간을 만든 것은 물론 아니다. 전문직 종사자들이 대부분 그런 것처럼 우리도 야근을 밥 먹듯 하고, 일 속에서 각자가 느끼는 개인적 성취감에 빠져 밤낮 없이 보내는 일이 허다하다. 하지만 그 또한 우리가 만들어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일이다. 그 안에는 계절의 오감을 느끼게 해주는 마당의 나무들도 있고, 석류나무의 열매만큼이나 예쁜 낙엽도 지고, 봄비 내리는 날이면 나뭇가지를 타고 내리는 빗물 방울도 살고 있다.

일하는 의미, 사는 재미가 적당히 섞인 유연한 작업 공간, 일을 통해 자기를 실현하지만 그 또한 그 공간의 한 부분으로 어우러져 녹는 것.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일터다. 62분의 시간은 그저 흘려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같은 시간대에 움직이는 다른 이의 표정이나 일상의 조각을 관찰하고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다. 책을 펼쳐들 수 있고 멍하니 공상에 빠지는 것도 허용되는 시간이다. 너무 고전적인 생각인지 모르나, 일을 하는 공간으로의 온전한 이동을 그저 물리적인 낭비로 받아들일 것만은 아니란 생각이다.

다시 티타임이 이루어지는 시간에 화답해야겠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부딪치고 함께 하는 시간 속에 우리들의 공간은 더욱 창의적이 되고, 우리 삶은 더욱 더 자유로워질 것임을 믿는다"라고.

편집출판디자인회사 홍익포럼 대표 gratia-de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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