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물기/ 김흥식 엮음/ 정종우 해설/ 서해문집 펴냄
'내가 어렸을 때 촉새 새끼 두 마리를 얻어 새장 속에 넣어 직접 길렀다. 새가 자란 후에는 풀어 주었다. 그런데 새들은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루에 한 번도 오고 이틀에 한 번도 오는데, 날아오면 내게 다가와 날개를 치며 울부짖는데 마치 먹이를 찾는 듯했다. 그래서 몇 달에 걸쳐 먹을 것을 주었다. 새 또한 이처럼 따르던 사람을 잊지 않는데, 어찌 사람이 은혜를 잊고 덕을 배반한단 말인가.'
'지봉유설'에 나오는 대목이다. 위 글에서 언급한 현상을 현대적으로 풀어내면 조류가 나타내는 '각인'이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오스트리아 학자 로렌츠는 인공부화를 통해 태어난 새끼 오리들이 태어나는 순간 처음 본 움직이는 대상을 자신의 어미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바로 '각인'이다.
이 책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눈에 비친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요즘처럼 세련되고 과학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나름의 합리적인 기준에 근거해 생물들을 분류하고 특징을 기술한 점은 놀랍다. 반면 21세기를 사는 사람들에게 허무맹랑하게 비쳐지는 이야기도 있다.
이 책의 내용을 두고 옳으냐, 틀리냐를 이야기하는 것은 호사가적 취미다. 이 책은 조선 선비들의 삶의 기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목적은 동물학적 지식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선조들이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동물을 바라보는 태도를 느끼기 위해서다.
과거에 쓰인 과학 관련 도서는 옳음과 틀림을 함께 품고 있다. 비록 내용 일부가 오류일지라도 그 기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틀림이 있기에 과학 발전이 가능했다. 서양 동물기가 신화적 가치를 인정받는 만큼 조선 선비들의 동물기 또한 그 자체로 존재 가치가 있다. 54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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