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영희와 함께 떠나는 세계일주] (7) 폴란드 바르샤바

전쟁의 상흔을 관광자원으로… 동유럽의 보석

바르샤바는 유럽의 수도 중 물가가 가장 싼 도시 중 하나다. 그래서 파리, 로마, 마드리드, 암스테르담 등 유럽 대도시에서 겪게 되는 불편한 물가가 바르샤바로 넘어오면 여행의 묘미요, 즐거움이 된다. 폴란드는 EU 국가지만 아직은 유로와 상관없는 곳이며 레스토랑, 호텔 등 여행 물가 역시 그것을 반영한다. 이곳에서는 같은 물건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다. 유로존을 거치고 온 여행자들이 바르샤바를 저렴하고 합리적인 곳이라 느끼게 되는 이유다. 유로로 인한 고통도 없다. 이런 재정적 자유 덕분에 이 역사적이고 화려한 수도는 어느새 매력적인 관광지가 되었다.

이런 매력을 제대로 즐긴 일이 있다. 바르샤바에 도착하자마자 허기부터 해결하려고 식당에 들어갔다. 그땐 돌도 씹어 먹을 수 있을 만큼 배고픈 상황이어서 아무거나 주문하려고 했는데 음식 가격대가 영 심상치 않다. 설마 단위가 유로는 아닐 테지. 폴란드 통화가 즈워티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잠시 간담이 서늘해진다. 이것저것 실컷 먹고 나서 계산서를 요청하니 청구 금액이 20이다. 단위는 예상대로 즈워티. 배부르게 실컷 먹고 마셨는데 계산해보니 우리 돈으로 7천원 정도다. 아, 유로에서 벗어난 것도 즈워티인 것도 이처럼 행복할 수가 없다.

폴란드의 매력이 저렴한 물가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바르샤바는 도시의 암울한 과거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관광자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아름다운 고도 크라쿠프, 해변을 끼고 있는 북부의 그단스크와 비교해 이곳은 항상 문화와 활력이 넘친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가 파괴한 도시는 1989년 이후 재건에 가속이 붙었고 지금까지도 시내 중심은 여기저기 공사가 한창이다. 이런 열기는 클럽 거리와 음악계로도 확장됐다. 달력은 매년 재기 발랄한 거리 축제와 특징 있는 전시회, 쇼팽과 관련된 음악 축제로 채워지고 있다.

바르샤바를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이 도시의 랜드마크인 문화과학궁전과 가장 먼저 마주치게 된다. 구소련이 폴란드에 '선물'한 이 거대한 건물은 1952년에서 1955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높이가 230.5m로 폴란드에서 가장 높다. 총 42층에 3천 개가 넘는 방이 있으며 궁전 내부엔 회의실, 연구소, 과학박물관, 극장, 카지노 등이 갖춰져 있다.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도시에서 전망이 가장 좋기로 손꼽히는 30층 테라스다. 맑은 날 전망대에 오르면 시내를 넘어 마조비안 평원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로비에서 꼭대기까지 순식간에 올려다 주는 엘리베이터는 그 자체로 매력이 있다. 문 안쪽에는 무표정한 두 사람이 미동도 없이 의자에 앉아 있는데 위쪽 버튼을 누를 때만 살짝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다. 아마도 유럽에서 안내원이 있는 유일한 엘리베이터일 듯하다.

바르샤바는 동유럽 도시 중 가장 처참하게 파괴됐지만, 복구사업에 힘썼고 지금은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그 결과 구시가지, 신시가지, 크라쿠프 교외 거리 및 도시 내 궁전 등을 포함한 바르샤바 역사 지구가 198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었다. 바르샤바는 비스툴라 강을 사이에 두고 두 지역으로 나뉘는데 동쪽엔 신시가지, 서쪽엔 중심가와 구시가지가 있다. 두 지역은 대부분 차량 통행이 제한되어 사진 찍으며 걸어다니기 편하다. 그중 핵심은 폴란드의 전통적인 식당, 카페와 상점이 있는 구시가지 광장이다. 16세기 바로크, 르네상스, 고딕양식 건물이 모여 있는 이 광장은 바르샤바에서 가장 오래된 지역이자 유명한 관광명소. 말발굽 모양의 도시 성벽인 바르비칸, 성요한성당과 같은 중세 건축물이 주변을 아름답게 둘러싼다.

하루 동안 바르샤바를 둘러본다면 마조비아 공작이 살았던 로열 캐슬에서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러고 나서 구시가지를 산책하며 남은 오전 시간을 보낸 후 점심은 신시가지에서 먹자. 바르샤바 업라이징 박물관으로 넘어가기 전, 로열 캐슬에서 남쪽으로 난 거리를 구경하며 걷다 보면 부른 배는 이미 꺼져 있을 것이다. 해 질 무렵엔 문화과학궁전 전망대가 멋진 풍경을 펼쳐놓고 여행자들을 기다린다.

하루 이상 머문다면 대형 박물관까지 세심히 살펴볼 것을 권한다. 관심사에 따라 유대인 역사박물관, 쇼팽 박물관 또는 광범위한 컬렉션을 갖춘 국립 박물관이냐가 결정될 것이다. 골동품에 관심이 있다면 반나절을 순식간에 보내버릴 곳이 있다. '바자르 스타로치 나 콜레'(Bazar staroci na Kole)라는 바르샤바의 북서쪽에 있는 대형 벼룩시장. 2차 대전 때 사용했던 녹슨 헬멧과 전쟁용품, 소비에트 시절을 상기시키는 진귀한 물건, 고가구, 장식품, 오래된 책 등을 판매한다. 토요일과 일요일 오후 3시까지만 열리니 오전 일찍부터 움직여야 한다.

온통 주황빛인 로열 캐슬에선 폴란드의 낭만이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에선 유대인 학살의 어두운 기억이 도시를 떠돈다. 2차 대전 당시 유대인을 강제 거주시킨 게토에는 약 50만 명이 좁은 공간에 모여 살았다. 주거환경이 열악해 전염병이 창궐했고, 식량 배급도 부족해 게토에서만 10만 명 이상이 죽었다고 한다. 이곳은 1943년 바르샤바 봉기가 일어나면서 불에 타 무너졌으며 이제 원조 거리는 한 군데만 남아있다. 2차 대전 당시의 유대인 참상은 바르샤바에서 촬영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에서 잘 드러나니 여행 전 이 영화를 미리 보고 가면 도움이 된다.

유대인 지구로부터 길을 가로지르면 바르샤바에서 가장 붐비고 특색 있는 식당이 나타난다. '붉은 돼지'라는 이름의 이 식당은 질 좋은 고기와 와인을 갖추고 거물급 공산주의자를 맞던 장소였다. 2006년에는 마르크스와 레닌이 그려진 숨겨진 벽화, 오래된 러시아 장교의 유니폼과 메달이 든 가방이 이곳에서 발견됐다. 폴란드 보드카와 전통 음악 속에서 여행지의 낭만을 만끽하며 바르샤바 여행을 마무리할 최적의 장소가 아닐까 싶다.

전 '대구문화' 통신원 android2019@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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