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 조건 없는 사랑

집에 있을 때 내가 주로 있는 장소는 다락방이다. 나를 제외하곤 올라오는 사람도 없어서 나만의 공간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다락에 있을 때면 머리 지척에 위치한 나지막한 천장으로 인해 왠지 모를 아늑함과 편안함까지 느낄 수 있어 혼자 조용히 생각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공간이다.

이렇게 혼자 다락을 차지하고 있을 때면 어느 순간 아래쪽에서부터 앨리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럴 때마다 '응, 앨리샤 왜?' 하고 대답해주거나 '우엥'거리는 요상한 앨리샤의 목소리를 흉내 내어 맞장구쳐 주면 '아옹'하는 가냘픈 대답과 연이어 '도도도도' 하는 앨리샤 특유의 잔걸음 소리가 들린다. 마치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허겁지겁 한걸음에 계단을 뛰어올라온 앨리샤는 내 앞에서 다시 한 번 더 아옹거리며 칭얼거린다. 그러고는 철푸덕 소리를 내며 무방비 상태로 발라당 누워버린다. 이런 앨리샤를 보고 있으면, 애교에 껌뻑 넘어가 간이고 쓸개고 몽땅 내어준다는 옛날 이야기가 새삼스레 떠오른다. 물론 이야기에서처럼 사람과 사람이 아닌, 사람과 고양이라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앨리샤가 우리 가족 앞에서 부리는 애교는 정말 어디 내놔도 빠지지 않을 정도다. 특히나 그 애교가 더욱 예쁘게 느껴지는 건 아마도 딱히 나에게 무언가를 바라면서 하는 행동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맛있는 간식을 먹고 싶다거나 배가 고파서, 또는 무언가 하고 싶어서 부리는 애교가 아니다. 그냥 단지 녀석과 함께 살고 있는 나이기 때문에 나를 찾아오고, 그 반가움을 표시하는 행동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 놓고 그 애교를 바라볼 수 있고, 더욱 앨리샤의 행동이 갸륵하다. 그 덕분에 가끔 앨리샤가 미운 짓을 해도 쉽게 풀어지고 용서가 되기도 한다.

사실 예전의 나는 '아무 이유 없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다'라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때문에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할 때면 대체 어떤 면모를 좋아하는 건지, 그리고 이렇게 저렇게 행동했을 때 상대방의 마음이 변하지는 않을지 늘 노심초사하고 의심하곤 했었다. 하지만 앨리샤를 보고 있자면, 그 의심 많던 마음이 사그라진다. 내가 좀 부족하고 내가 좀 사고를 쳐도, 그리고 행여 내가 좀 나쁘더라도, 언제든 나를 불러주고 내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반대로 뒤집어도(앨리샤가 사고를 치더라도) 역시 마찬가지로 그저 이유 없이, 조건 없이 마음을 내어주는 것이다.

우리 가족의 식사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앨리샤가 온다. 그러고는 그냥 빈 의자에 앉거나 내 옆에 몸을 딱 붙이고 앉아 있다. 혹은 식탁 모퉁이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있기도 한다. 앨리샤는 식사시간에 먹을 것을 탐내거나 달라고 칭얼거리려고 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단지 가족들이 다 모여 있으니까 자신도 우리 곁에 있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우리 집 반려 동물들에게 난 '조건 없는 사랑'을 배워 간다. 물론 '우리 집 반려동물'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긴 하겠지만, 그래도 마냥 나를 보고 싶어 하고, 찾고, 따르고, 어느 순간 옆에 와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 뜨며, 발라당 배를 까뒤집고 누워서 고롱고롱 거리는 녀석들을 보다 보면 나 역시 절로 마음이 간다. 그리고 녀석들을 쓰다듬어 주며 혼자 속으로 조용히 되뇐다. '너에게 내가 그렇듯, 나 역시 네가 없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말이다.

장희정(동물 애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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