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향촌동 수제화골목의 'OO제화'. 가게에 들어서자 진한 가죽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게 뒷문에서 흘러나오는 망치 소리를 따라갔다. 33㎡(10평) 남짓한 공간에서 3명이 구두를 제작하고 있었다. 한 작업자는 "요즘 일감이 늘어나 하루에 10켤레 이상 만들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주문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 중구 수제화골목이 활기를 찾고 있다. 언론을 통해 수제화골목이 전국에 소개되면서 수제화를 찾는 이들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쇠퇴에서 다시 찾은 부흥
수제화골목이 자리한 향촌동 일대는 1960년대에 다방, 술집이 많아 사람들로 넘쳤다. 1970년대부터 수제화 전문점이 몇 곳 들어섰고 1980년대 교동에 몰려 있던 수제화 가게들이 지금의 위치로 옮겨와 300m 골목에 수제화 가게와 공장, 피혁점이 130여개에 달했다.
한 상인은 "일주일 일하면 공무원 월급만큼 벌 수 있는 시대였다. 넘쳐나는 주문으로 새벽까지 일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수제화는 고급 천연가죽 소재로 만들기 때문에 편안하게 신을 수 있다. 수제화는 가죽이나 굽 변경이 가능하고 합성피혁 기계화(기계로 만든 신발)에 비해 땀 흡수가 잘돼 발 냄새가 적다. 품질은 우수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해 패션 감각을 가진 이들이 수제화를 많이 찾았다.
하지만 1990년대 말부터 수제화는 쇠퇴의 길을 걸었다. 값싼 중국산 구두와 기성화가 쏟아지면서 수제화 가게들이 사라져갔다.
한 관계자는 "2000년대 들면서 대형마트와 홈쇼핑에서 값싼 구두가 쏟아지면서 수제화를 찾는 이들이 거의 사라졌다"고 말했다.
최근 10여년간 수제화 가게들은 반 토막 나 70개로 줄었다. 이후 가게들은 수제화골목을 살리고자 머리를 싸맸다.
작년 5월 대구수제화협회는 공동브랜드 개발과 공동판매장 운영을 골자로 하는 수제화골목 활성화 대책을 마련했다. 공동브랜드 '편아지오'를 만들었고 지난해 9월 수제화전문 마을기업 '편아지오'가 문을 열었다.
이 같은 노력은 지난해 연말부터 결실을 보았다. 지난해 12월 한 지상파 프로그램을 통해 수제화 골목이 소개되면서 전국에서 수제화 주문 요청이 늘어났다.
백화점에서 20, 30만원대에 구입하는 수제화도 알고 보면 이곳에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한 수제화 대표는 "반대로 생각하면 백화점과 똑같은 물건을 이곳에선 10만원에 구입할 수 있다. 그래서 일부 손님들은 백화점에서 디자인을 골라 자신만의 구두를 맞추기도 한다"고 말했다.
◆임금과 인력양성이 열쇠
수제화골목이 큰 관심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고민거리는 남아있다. 바로 '사람'이다. 수제화골목이 쇠퇴의 길을 걸으면서 수제화를 배우겠다는 사람도 없어졌다. 이곳 장인들이 하루 내내 웅크려 앉아 만든 구두 한 켤레의 임금은 단돈 6천500원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대구수제화협회는 최근 부는 수제화의 관심이 이어지도록 인력양성을 시도할 예정이다. 다문화가정, 취약계층 등을 대상으로 기술을 가르치고 일감도 제공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구상을 하고 있다.
대구수제화협회 우종필 회장은 "수제화기술센터가 올 상반기 중에 문을 열 것"이라며 "6개월에서 1년 과정으로 수제화 제작 기술을 배울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명장' 칭호를 수여하고 자격증을 만들어 수제화 기술에 대한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수제화 골목에 활기를 불어넣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수제화 골목의 부흥을 위한 '볼거리'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순히 구두를 만드는 제조공장이 아니라 가죽제품 전반을 다루면서 공방을 만들고 옛 문화공간을 살려 관광까지 가능한 형태로 골목을 변화시키야 한다.
한 전문가는 "이탈리아 밀라노 두오모 성당 인근에는 가죽공방을 운영하는 이들이 관광객을 상대로 구두를 수선하거나 수제화 제품을 판매하기도 한다"며 "수제화를 하나의 관광상품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대 이철우 교수는 "향촌동 수제화골목은 도심에 제조업이 자리하고 있는 도시지리학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형태다. 이곳을 밀라노처럼 만들면 도심개발에 새로운 롤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이준석, 전장연 성당 시위에 "사회적 약자 프레임 악용한 집단 이기주의"
[전문] 한덕수, 대선 출마 "임기 3년으로 단축…개헌 완료 후 퇴임"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민주당 "李 유죄 판단 대법관 10명 탄핵하자"…국힘 "이성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