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는 깊은 슬픔에 잠겼다. 시신이 잇따라 올라오자 비명 섞인 통곡이 밤늦게까지 진도를 울렸다. 실종자 가족들의 통곡 사이엔 무거운 정적이 깔렸다. 실종자 가족들의 눈빛은 빠른 구조를 바라던 다급함에서 이제는 차가운 바닷속에서 꺼내주지 못한 미안함으로 바뀌었다. 사무치는 그리움을 안고 속절없이 바다를 바라보는 일도 잦아졌다. 미안함과 참담함이 목까지 차올라 갑작스레 울음을 터뜨리는 일도 많아졌다.
21일 오후 9시쯤 전라남도 진도군 팽목항 부두. 너울대는 파도를 가르며 해양경찰 경비함이 들어왔다. 경찰 80여 명이 두 줄로 서서 경찰통제선을 만들었다. 마스크를 착용한 소방대원 6명이 시신을 들고 100여m를 이동해 신원 확인 장소로 옮겼다. 한꺼번에 5, 6구의 시신을 옮기는 줄은 길게 이어졌다.
오후 9시를 넘어서자 가족들이 속속 도착했다. 대기소에 모인 50여 명의 가족은 초조한 표정으로 조심스레 서로 위로했다. 9시 50분쯤 검시관이 가족대기소 앞에서 신원이 확인 안 된 사람들의 특징을 하나하나 설명했다. 얼굴의 점과 치아 상태, 머리카락의 길이, 옷 색깔 등을 이야기하자 가족들이 달려들어 신원을 확인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시신확인소에 들어서자마자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겨우 뱉어낸 말에는 깊은 슬픔이 배었다. "우리 딸 어떡해. 다시 살려내. 너 없이 나는 살 수가 없어. 구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울부짖었지만 딸은 아무 말이 없었다. 통곡이 천막 밖에서 새어나오자 대기하던 다른 가족들은 침통해 했다. 눈물을 흘렸고, 서로 안으며 "괜찮다"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앞서 오후 8시쯤 23구의 시신 발견소식이 진도 체육관에 전해졌다. 술렁이던 체육관엔 다시 오후 8시 50분쯤 대형 스크린으로 시신의 특징 등이 적힌 정보가 떴다. "비켜요, 앉으세요. 앉아 좀." 가족들은 예민한 반응을 보였고,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들렸다.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울거나 사람이 뜸한 바깥 출입문 쪽에 쪼그려 앉아 흐느끼기도 했다. 한 여성은 시신 일련번호 83번을 가리키며 "내 딸인 것 같은데 키가 달라요. 수학여행 간다고 입고 나간 옷 등 키 이외 나머지 특징은 다 맞아요"라며 남편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해양경찰은 이날 모두 시신 29구를 수습했다. 실종자 가족들은 생존에 큰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죽음을 말하지도 않았다. 누구는 죽음을 말없이 받아들이고 있었지만 쉽게 입에 담지 않았다. 가족들은 아직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보였다.
외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한 아버지는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이제 살아 있을 확률은 0.001%라고 하더라. 이제는 아이들의 시신을 어떻게 수습할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단원고의 다른 학생 어머니가 목에 걸린 울음을 힘겹게 삼키며 "물론 나도 내 자식 죽었다는 것은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렇게 매정하게 말할 수 있느냐"고 항의했다.
진도에서 서광호 기자 kozmo@msnet.co.kr
홍준표 기자 agape1107@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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