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좋은생각 행복편지] 세대 공감

작년 12월부터 도심인 동성로를 거쳐 출근합니다. 지하철을 타고 반월당역에 내려서 가게들 문이 닫힌 한적한 동성로를 걷는 기분이 색다릅니다. 대학교에 다닐 때에는 건널목 몇 개만 건너면 도심-대구 사람들은 흔히 '시내'라고 하지요-이라서 점심때마다 동성로의 식당들을 기웃거렸습니다. 졸업을 하고 시간이 흐르고 나서 어느 순간부터는 도심에 잘 나가지 않게 되었습니다. 한 번씩 도심에 갈 때는 제가 군중에 섞이지 못하는 것 같다는 묘한 이질감이 들 때도 있었습니다. 지인들과 이런 느낌들을 나누다 보면 그들도 도심에 간 지 참 오래되었다는 말을 합니다. 흘끔 도심 거리를 훑어봐도 나이 든 분들보다 젊은이들이 참 많습니다.

문득 젊은이들은 그들끼리 모이는 장소가 따로 있고 나이 든 사람들은 그들만의 아지트가 따로 있다면 세대 간에 만나고 서로 관찰할 기회가 줄어들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날 기회가 줄어든다는 것은 생각을 공유할 기회가 줄어든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작은 공간의 분리가 세대 차이를 더 극명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1860년대, 프랑스 파리의 카페 게르부아(Guerbois)에 저녁마다 한 무리의 화가들이 모였다고 합니다. 우두머리는 마네였고 그의 절친한 친구 드가, 멜빵 바지를 입은 세잔, 모네, 르누아르, 피사로 등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전통적인 형식을 중요시하는 살롱(Salon'예술 전람회)의 인정을 받지 못한 화가들이어서 딱 굶어 죽을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치, 문학, 예술에 대해 격렬하게 논쟁했습니다. 인상주의는 그렇게 해서 파생되었고 지금 그들의 그림은 전 세계의 주요 미술관에 걸려 있습니다. '카페'라는 작은 공간 안에서의 불꽃 튀는 상호작용으로 인상파 사조가 싹텄다고 하니 인상파 작품들은 공간이 주는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내 나이에 이런 옷을 입으면…'등의 고정관념은 좀 사라져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 '꽃보다 누나'라는 TV 프로그램을 본 적이 있는데 그 '누나들' 중에서 스키니진을 입은 최연장자 윤여정 씨가 제일 빛나 보였습니다. 저는 마흔이 넘었지만 백팩 메고 '김수현 운동화'를 신고 다닙니다. 젊은이들 생각도 궁금해 가끔 가요순위 프로그램도 보고 인기 드라마는 일부러라도 챙겨 봅니다. 흰머리를 가리려고 새치염색에 신경 쓰기보다는 한 번쯤은 도심에 나가 젊은 기분도 충전해 보는 것이 정신적 염색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얼마 전 매일 탑리더스 아카데미에서 정신과 의사 이시형 박사의 강연을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박사는 나이로 차별받는 것이 가장 슬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성균관대 정년 퇴임식에도 주인공인 이 박사는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었다는 이유로 쫓겨가는 듯한 모습을 보여주기 싫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이로 81세인 그는 평생 현역 정신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얼마 전부터는 자신이 제일 못하는 분야인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며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새로운 것을 많이 배워야 뇌가 젊어지고 뇌가 젊어져야 몸이 건강해진다고 합니다.

스스로 나이에 경계를 치는 방법은 자신에게 제일 잘못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이카루스(Icarus)는 태양을 향해 날아오르다 밀랍으로 만든 날개가 녹아내려 결국 추락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만이 이카루스를 바다에 빠뜨려 죽게 하였다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해석이 있습니다. 너무 낮게 안전하게만 날려고 하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합니다. 적어도 이카루스는 자신에게 한계를 지우지 않고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도 봤으니 죽더라도 행복했을 테지요.

지난 대선 때 거의 모든 언론매체의 결과 분석이 세대 차이라고 했습니다. 젊은이와 나이 든 사람들과의 정치 스펙트럼의 간극은 확실히 큽니다. 세대 차이 중에 정치적 좌우는 극복 못 하더라도 생각의 위아래는 극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연장자가 젊은이들에게 먼저 한걸음 다가가 손을 내밀어 본다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홍용택/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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