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소백산 자락길] <상>소수서원∼비로사 '1자락'

길손 반기는 물·바람·꽃…

소백산 길의 백미로 손꼽히는 1자락길.
소백산 길의 백미로 손꼽히는 1자락길.

소백산을 빼고 영주를 이야기할 순 없다. 백두대간의 허리, 겹겹이 쌓인 소백산 산세는 어머니의 품처럼 부드럽다. 그래서 사람들은 소백산의 속살을 들여다보고 싶어한다. 옛 선비들이 걷던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소백산이 품은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 바로 자락길이다.

까마득한 숲길 속을 휘적휘적 걷노라면 과거로 돌아간 듯한 기분에 휩싸인다. 이 길은 걷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는 길이고 자연과 벗하고 싶은 사람들이 찾는 길이다. 선조들의 삶과 애환이 서려 있고 불국정토의 꿈과 대동사회의 이상이 묻어 있다. 과거와 미래가 공존하는 길이기에 마음을 힐링시키는 길이기도 하다. 잔인하고 비통한 4월이지만 천지에 가득한 싱그러운 신록과 앞다퉈 머리를 내미는 꽃들의 향연을 만끽하기 위해 소백산 1자락길을 찾았다.

◆소백산 자락길의 백미 1자락

소백산 자락길을 걸을 때는 '선비걸음'으로 걸을 일이다. 자락길이 시작되는 소수서원은 조선 500년을 관통하는 유학이념이 녹아있는 최초의 사설 교육기관이다. 이곳에서 출발한 걸음은 느리되 허리는 꼿꼿해야 한다. 이뿐이겠는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맞서다가 228년간 순흥부(府)가 없어지는 화를 입은 지조의 땅이니 옷깃을 여미고 삼가는 마음으로 길을 나서는 것이 마땅하다.

소수서원에서 출발하는 1자락은 죽계구곡과 초암사, 달밭골길, 비로사를 거쳐 삼가주차장으로 가는 12.6㎞ 구간이다. 1자락은 선비길과 구곡길, 달밭길로 나뉜다. 소백산 자락길의 진면목을 만날 수 있는 코스로 1자락을 꼽는다. 선비길(선비촌~금성단~순흥지~배점마을)과 구곡길(배점마을~초암사), 달밭길(초암사~달밭골계곡~비로사~삼가주차장)로 이루어진 1자락은 볼거리도 많고 풍광도 아름다워 영주 소백산 자락길의 백미로 꼽힌다.

◆선비길

1자락의 출발점은 소수서원이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입한 뒤 소수서원과 소수박물관'선비촌을 둘러보는 것으로 자락길 여행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임금이 이름을 지어 내림)서원인 소수서원에 들어서면 기품있는 소나무숲이 길손을 반긴다.

짧은 솔숲 길을 지나면 본격적인 소수서원 탐방이 시작된다. 유생들이 모여 강의를 들었던 강학당, 서원 원장과 교수의 집무실인 직방재와 일신재, 오늘날 대학 도서관에 해당하는 장서각 등을 차례로 둘러본 뒤 소수박물관으로 발길을 옮기면 고구려 벽화고분과 국보 제78호 금동미륵보살 반가사유상, 보물 제485호 대성지성 문선왕전 좌도(72명의 제자들이 공자 앞에 길게 늘어서 앉아있는 그림) 등의 희귀 유물을 감상할 수 있다. 선비촌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한국선비문화수련원이 있고, 왼편으로는 소수박물관, 소수서원과 맞닿아 있다.

소수박물관을 지나면 바로 선비촌이다. 영주지역의 고가들을 복원해 조성한 선비촌에서는 조선시대의 양반과 상민들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다. 선비촌을 나서 제월교(속칭 청다리)를 지나면 금성대군신단(금성단)이 눈에 들어온다. 조선 세조 때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화를 당한 금성대군(세조의 아우)과 순흥부사 이보흠 등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제단이다.

순흥향교 방면으로 길을 잡으면 압각수가 나온다. 은행나무과인 압각수는 잎 모양이 오리발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압각수를 지나 과수원 길을 따라가면 배점마을이다.

길은 마을을 지나치고 들판을 가로지른다. 이른 봄빛에 물오른 풀잎이 바람에 흔들린다. 길가 집들의 지붕은 낮고, 열매를 맺기 위해 피운 꽃들은 온통 형형색색으로 물들인다.

배점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입구에 비각이 한 채 서있는데 퇴계 이황이 거두어 가르친 무쇠장이(鐵工匠) 평민선비 배순의 충효정신을 기린 정려각이다. 이 마을은 배순의 점방이 있던 마을이라고 해서 배점마을로 불린다.

커다란 저수지가 눈에 들어온다. 순흥지다. 산속에 있는 저수지 치고는 규모가 꽤 크다. 순흥지를 오른쪽에 두고 조금 더 올라가면 성혈사와 초암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구곡길

과수원길을 따라 산기슭을 돌아나가면 물 흐르는 소리가 기운차게 들린다. 발아래로 펼쳐진 계곡에는 잘생긴 바위들이 이끼를 덮은 채 얼기설기하다. 흙길에 비해 운치가 떨어지지만 오른쪽에 '죽계구곡'을 끼고 있어 걸을 만하다. 죽계구곡은 퇴계 이황이 계곡의 풍취에 심취돼 아홉 구비에 이름을 붙인 뒤 죽계구곡이라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수정처럼 맑고 차가운 물이 시원스럽게 흘러가기 때문에 땀을 식히기엔 안성맞춤이다.

조선 유학자들이 성지처럼 찾아들던 죽계구곡 중 맨 마지막 제9곡이다. 맞은편 산기슭을 건너는 시멘트 다리 끄트머리 한쪽 바위에는 힘찬 글씨로 '죽계구곡'이라고 음각해놓았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풍광에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곳이 죽계구곡 제1곡과 제2곡 사이다,

시멘트 포장길을 3㎞ 정도 오르면 산기슭에 자리 잡은 비구니 사찰 초암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신라 의상대사가 부석사 창건 전에 초암을 얽었던 자리라고 해서 초암사라고 이름했다.

초암사에서 만난 비구니는 자락길을 걷는 길손에게 커피 한 잔을 건넸다. 잠시 땀을 식히고 속세를 사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꿈을 꿔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우람한 거석 축대와 주춧돌 등은 규모가 큰 절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사찰은 6'25전쟁 때 파괴된 뒤 다시 지은 법당이 남아있고, 삼층석탑(경북도 유형문화재 126호)과 동부도(경북도 유형문화재 128호), 서부도(경북도 유형문화재 129호)가 남아 있다.

높이 3.5m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한 것으로, 사각형 지대석 위에 세워진 이중기단의 각 면석에 우주가 있고, 일주씩 탱주를 모각했다. 각 층 옥신에도 우주가 있고, 옥개석 아래 4단의 받침이 있지만 상륜부는 없고 그 주변에 파편이 흩어져 있었다.

초암사부터는 계곡을 따라 소백산 자락길이 자랑하는 최고의 비경이 펼쳐졌다. 계곡수와 봄꽃이 길손을 맞고 있고 삼삼오오 짝을 지은 길손들은 웃음꽃을 피웠다.

◆달밭길

초암사에서 5분 정도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낙동강 발원지 중봉합수가 나온다. 소백산 비로봉과 국망봉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다. 여기서 물소리가 커지는 이유다.

2.4㎞가량 오르막길을 따라 산을 돌아들면 달밭골이다. 빽빽한 숲길이 달밭골까지 이어진다. '달밭'은 '산에 있는 밭'이라는 뜻이다. 오래전 화전민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었고, 해방 이후 정감록의 '비결서'를 믿었던 사람들 중 일부가 십승지 중의 하나였던 이곳으로 숨어들었다고 한다.

허름한 민가 앞을 서성거려도 인기척은 없다. 좁은 오솔길이지만 온통 봄꽃으로 가득하고 울창한 숲은 시원한 그늘을 제공한다. 오르막이 이어지지만 계곡길과 숲길이 번갈아 나오니 지루하지는 않다. 오르막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비로사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원시림처럼 울창한 잣나무 숲을 100여m 지나면 숲길은 끝이 난다.

달밭골계곡은 소백산 양대 봉우리인 비로봉과 국망봉을 꿰차고 있어 골이 깊고 물도 맑다. 산길을 벗어나니 '산골민박'이 눈에 들어왔다. '뭐라도 먹자' 싶어 막걸리 한 통을 청하니 주인장 김진선(53) 씨가 안으로 안내한다. 서울에서 매주 금요일 내려와서 월요일에 올라간다는 김 씨의 아내가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더니 아침에 만들었다는 촌두부와 신김치를 담아 내려놓는다.

김 씨는 올해로 귀향 12년 차다. 고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상경했다가 25년 만에 고향집으로 내려와 아버지가 40년간 하던 민박집을 물려받았다고 했다. 김 씨의 민박집 앞 작은 원두막에는 자율계산함이 있다. 먹고 싶은 만큼 꺼내 마시고 알아서 돈을 내라는 식이다.

"자율계산함을 설치하고 놀라운 경험을 했어요. 늘 막걸리 값보다 많은 돈이 들어 있는 거예요. 나는 누가 몇 병을 먹었는지도 모르거든요. 그런 걸 보면 아직 살 만한 나라예요."

이곳엔 또 하나의 명물 '자유의 종'이 있다. 1968년 영주 철도국에서 기증한 45년이나 된 종이다. 1960년대 달밭골에 40여 가구가 살 때 위급상황이나 마을 회의를 소집할 때 연락용으로 쓰던 종이다. 그는 "소백산 자락길 여행 중 이곳을 지나는 이들이 종을 치며 반기고 인사하면 좋겠다는 의미로 달았다"며 "소백산부터 작은 바람을 일으켜보고 싶다. 물질보다 가치를 중시하며 한없이 자신을 비우는 '나눔의 바람'을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민박집을 나서 600m쯤 산 아래로 내려가면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말사인 비로사를 만나게 된다. 고려 태조가 방문해 법문을 들은 곳으로 유명하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석불상 2구만 남고 모두 불타버린 뒤 1609년(광해군) 중건됐고, 1908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불에 타 1919년 다시 중수됐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새로 지은 법당과 요사채뿐이지만, 진공대사보법탑비(경북도 유형문화재 4호)와 석조당간지주(경북도 유형문화재 7호),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996호) 등 중요한 유물들이 남아 있다. 비로사에서 남동쪽으로 1.8㎞ 내려가면 1자락 종착점이자 2자락 출발점인 삼가주차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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