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침몰 참사 현장에서 너무나 슬프고 안타까운 모습을 많이 봤기 때문일까. 1주일 동안 참사 현장 취재를 하다 온 기자에게 우울증과 무기력증 등 각종 정신적 장애가 찾아왔다. 할 수 없이 기자는 2일 오후 동산의료원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대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
증상은 지난달 25일 대구로 돌아오자마자 곧바로 나타났다.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고 머릿속이 텅 빈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긴장이 풀렸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지난달 28일 오후 대구 달서구 두류공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헌화하고 묵념을 하는 순간, 참사현장에서 본 피해자 가족들이 생생하게 떠올랐고 갑자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면서 우울해졌다.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후 1주일 동안 심장이 두근대면서 가슴이 답답했다. 활기도 없었다. 신경과민 반응도 몇 차례 있었다. 동산의료원 신경정신과 김정범 교수는 상태를 보더니 '대리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대리 장애)라는 진단을 내렸다.
대리 장애는 전쟁이나 고문, 재난 등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을 접했을 때 발생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증상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불안, 공포, 무력감, 분노와 같은 감정이 1개월 이상 지속될 경우 판정하는 질환이다. 대리 장애는 세월호 침몰 참사 같은 대형 재난을 가까이에서 접하는 직업군에서 주로 나타난다. 하지만 일반 국민도 반복되는 영상이나 관련 뉴스에 장기간으로 무차별 노출되면 대리 장애를 겪을 수 있다.
대리 장애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들과 비교하면 증상의 강도는 약하다. 회복이 상대적으로 빠르고, 회복 가능성도 크다. 김 교수는 "활동적인 분위기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며 가벼운 마음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교수는 기자처럼 이상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다면 병원을 즉시 찾을 것을 강조했다. 이상반응을 내버려둘 경우 자칫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로 커지거나 우울증 및 수면장애 등 정신과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사회적 문제로 접근해야
김 교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단순히 개인의 문제보다는 사회와 국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국가적인 지원을 통해 지속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2003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후 5년간 후유증 연구를 했다. 그 결과, 참여자 중 50% 이상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었고 11년이 지났는데도 증상이 완화된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치료에 최소한 10년 정도가 필요하며 그만큼 오랜 시간 추적치료가 필요하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는 정신적 고통뿐 아니라 뇌 손상이나 생리 변화도 일으킨다. 류인균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교수의 2005년 논문에 따르면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생존자들이 사고 당시의 정신적 충격으로 대뇌의 전두엽과 측두엽 부분에 심한 손상을 입었다고 했다.
김 교수는 "지역에는 아직 사고 후 장애를 겪는 이들을 위한 관심이나 시스템이 부족하다"면서 "전문치료센터를 만들어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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