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외로운가요? 극복하는, 혹은 즐기는 사람들

홀몸 어르신들이 대구수목원에서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사회복지법인 진명복지재단
홀몸 어르신들이 대구수목원에서 봄나들이를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사회복지법인 진명복지재단

혼자인 사람들이 뭉치고 있다. SBS '룸메이트', 올리브TV '셰어하우스', MBC '나 혼자 산다' 등 1인 가구를 소재로 한 예능에서도 혼자인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인다. 이들은 함께 살면서 공간을 공유하거나, 음식을 나눠 먹거나, 혼자 사는 삶을 이야기한다. TV 속 이야기만이 아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외로움을 극복하는 사람들이 있다. 모임을 만들어 집밥을 나눠 먹기도 하고 주기적으로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또 '외로움은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는 것'이라고 발상을 전환하는 사람도 있다.

◆1. 함께 밥먹기…객지 나온 직장인·자취생활 대학생 "여럿이 밥 먹으니 좋네∼"

대기업 해외영업팀에 근무하는 박상연(31) 씨는 고향을 떠나 서울에 온 지 4년이 됐다. 그는 자신처럼 타지생활을 하며 외로움을 느끼는 직장인이 주변에 많다고 느꼈다. 그가 소셜다이닝 '집밥'에서 집밥 모임을 주선하게 된 계기였다. 박 씨는 '당신의 밥과 음악'이라는 모임을 통해 한 달에 한 번 모르는 사람들과 모여 식사를 하고 음식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박 씨는 "우연한 기회에 '밥과 음악'을 개설하게 됐는데 반응이 좋아 앙코르 모임이 이어지고 있다"며 "현재 밥과 음악 모임에는 은행원, 교사, 디자이너, 작가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셜다이닝이란 서로 모르는 사람과 만나 식사를 하며 인간관계를 맺는 행위를 뜻한다. 모임 구성원 중 한 사람이 셰프가 돼 요리를 할 수 있고, 각자 음식을 해오거나 집밥 같은 음식을 함께 사먹기도 한다. 집밥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모임이다. 가족을 떠나 타지생활을 하는 직장인들, 자취생활하는 대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

소셜다이닝 '집밥'을 통해 모임을 개설하거나 이미 개설된 모임에 참가할 수 있다. 자신이 직접 모임을 개설하고 싶다면 모임 개설 페이지에서 원하는 일정, 장소,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를 적으면 된다. 개설된 모임에 참가하고 싶다면 모임 리스트에서 원하는 날짜와 지역을 선택하고 마음에 드는 모임에 신청한 뒤 식사비와 참가비를 결제하면 된다.

집밥 모임에서는 음식뿐만 아니라 공통 관심사, 취미 등도 나눌 수 있다. 집밥 사이트에는 '채식주의자를 위한 채식 식사모임' '중국 음식 먹으며 중국 문화 공유해요' 등 다양한 주제별 모임이 개설돼 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의 식사가 어색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은 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이 관심 있는 주제를 정해 모임에 참가하면 어색함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2. 함께 놀기…홀몸노인들 안부 묻고 수다 떨고…"심심할 새가 어딨어∼"

20일 오전 11시 대구수목원을 찾은 홀몸노인 150명의 얼굴은 수목원을 찾은 유치원생들처럼 밝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수목원 구석구석을 돌아봤다. 아침에 봤던 TV 프로그램 '아침마당' 이야기를 하고, 손주들 안부를 묻기도 했다. 이 어르신들은 사회복지법인 진명복지재단이 진행한 '청춘은 60부터' 프로그램에 참가한 홀몸노인들이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어르신들은 설레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월란(71) 씨는 "뭘 입을지, 화장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느라 잠을 제대로 못 잤어. 아침에 일어나서 준비하는 데만 1시간이 넘게 걸렸어"라며 수줍은 듯 웃었다. 주청자(72) 씨는 "요즘 어떤 자식이 한 달에 한 번씩 부모 데리고 나와 구경시키고, 맛있는 거 먹여요. 자기들 사느라 바쁘지. 프로그램에 1년밖에 참여를 못한다니 아쉬워요"라며 옆에 있던 사회복지사를 쿡쿡 찔러 "더 오랫동안 참여할 수는 없는 거유?"라고 묻기도 했다.

인터넷, SNS 사용이 어려운 60세 이상 홀몸노인이라면 누구나 '청춘은 60부터' 프로그램에 참가할 수 있다. 프로그램에는 어르신들이 참가할 수 있는 건강교실, 영양교실, 문화체험교실, 새 인연 새 친구 맺기 활동 등이 있다. 동주민센터에 매월 18일까지 신청하면 그다음 달부터 1년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혼자 사는 어르신들끼리 어울리다 보면 외로움을 극복하는 비법을 서로 공유할 수 있다. 문홍분(84) 씨는 주위 할머니들에게 혼자 건강하게 사는 비법을 이야기해주기도 했다. "걱정을 안 해야 돼.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그저 밝게 살아야 해. 사람도 많이 만나고." 다른 할머니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문 할머니의 말을 경청했다.

함께 여행을 하면 새 인연을 만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다. 한 달에 한 번 있는 나들이를 오면 할머니, 할아버지 간의 미묘한 애정 전선이 생기기도 한다. 진명복지재단 윤상호 팀장은 "홀몸노인들끼리 연애를 시작하는 경우도 있어요. 행사 올 때도 손잡고 오시고 행사 끝나고도 노래방에 가거나 찻집에 가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든든해요"라고 말했다.

◆3. 그냥 즐겨!…"외로움은 받아들이는 것…혼자 밥 먹기 즐거운 미션"

혼자임을 드러내놓고 즐기는 것도 외로움을 이기는 하나의 방법이다. 최근 '혼밥족'(혼자 밥 먹는 사람들), '독강족'(혼자 강의 듣는 사람들)처럼 외로움을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최근 인터넷상에서 '혼자 밥 먹기 레벨'이라는 글이 화제가 됐다. 게시물은 혼자 밥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을 1단계부터 9단계까지 정리해 뒀다. 사람들은 '나는 여기까지 해 봤다'며 자신의 SNS상에 자랑을 하기도 한다. 단계는 각각 ▷1단계: 편의점에서 혼자 라면 먹기 ▷2단계: 푸드코트에서 혼자 먹기 ▷3단계: 분식집에서 혼자 먹기 ▷4단계: 패스트푸드점에서 혼자 먹기 ▷5단계: 중국집, 냉면집에서 혼자 먹기 ▷6단계: 일식집이나 전문요리집에서 혼자 먹기 ▷7단계: 피자나 스파게티 등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혼자 먹기 ▷8단계: 고깃집에서 혼자 먹기 ▷9단계: 술집에서 혼자 술 마시기 등이다.

혼자 밥 먹기를 즐기는 신지후(24) 씨는 지난 4월 7단계에 성공했다. 파스타가 정말 먹고 싶은데 친구들과 시간을 맞추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신 씨는 "패밀리레스토랑에 혼자 들어섰을 때는 두려웠지만 직원들이 민망하지 않도록 배려해줘서 편했다"고 말했다. 앞으로 9단계까지도 도전해볼 계획이다.

"간단하게 맥주랑 감자튀김 먹을 수 있는 곳이라면 가능할 것 같아요. 고깃집도 가고 싶은데 2인분 이상만 취급하니까 좀 꺼려지네요."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