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성환 교수의 세상보기] 김부겸과 박근혜의'기묘한 동맹'

제2차 세계대전은 일본과 독일 파시즘 체제의 세계 정복전쟁이었다. 미국과 러시아(구소련)는 연합하여 여기에 맞섰다. 미국과 러시아의 연합이 없었다면 제2차 세계대전은 다른 결과를 낳았을지 모른다. 파시즘이라는 공동의 적이 있긴 했으나, 대척점에 있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미국과 러시아의 연합은 부자연스럽다. 그래서 이를 '기묘한 동맹'(strange alliance)이라 했다. 이 기묘한 동맹은 파시즘으로부터 인류를 지키고, 미국과 러시아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대구시장 선거가 한창이다. 막대기만 꽂아도 새누리당은 당선된다는 30년 이상의 대구 정치 구조가 흔들리고 있다. 현직 시장이 출마를 포기하면서 정치적 기득권자도 없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높은 지지율을 얻은 새정치민주연합의 김부겸 후보가 시장에 도전한다. 새누리당에는 단기필마로 경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전 서울 정무부시장 권영진 후보가 있다. 이번 선거의 역동성은 오랫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한 대구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민들의 강한 욕구의 표현이다. 두 후보 모두 대구의 변화에 불을 붙이고 있지만, 김부겸 후보가 내걸고 있는 '여당 대통령-야당 대구시장' 구호가 흥미롭다. 소위 역발상의 슬로건이다. 그의 이력을 살펴보자.

김부겸은 1977년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되었다. 1980년 계엄령 위반으로 또 구속되고 학교도 떠나야 했다. 이 시절 그를 지켜본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걸출한 웅변가였고, 결의에 찬 행동가였다"고 회상한다. 한 때 작은 출판업을 하면서 대구에 정착을 시도했으나, 그는 1980년대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반독재 투쟁으로 보낸다. 1990년대에는 민주당 간판으로 두 번 국회의원에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그 후 3김 청산을 명분으로 한나라당에 둥지를 틀고, 2000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된다. 정치인 김부겸을 만든 것은 민주당(새정치민주연합)이 아니라 한나라당(새누리당)이다. 그러나 그는 체질적으로 보수 정당과는 어울리지 않은 듯 국가보안법 폐지와 북한송금 특검법 반대로 계속 분란을 일으켰다. 2003년,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여 지금에 이른다. 한나라당 시절에는 같은 세대의 박근혜 의원과도 인연을 쌓고, 열린우리당 국회의원으로서 혼자 박지만 씨 결혼식에 참석했다.

그의 정치 이력을 보면 두 가지 흐름이 읽힌다. 유신, 5공, 3김(金)에 저항했으며, 진보와 보수의 정당 틀을 넘나들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왔다 갔다 했음에도 그를 철새 정치인이라 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양지보다는 명분을 따랐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가 3선을 한 경기도 군포를 떠나 대구에 내려올 때도 지역주의 타파라는 명분을 가지고 왔다. 그의 삶을 볼 때 그가 이번 선거에 '박근혜 대통령-김부겸 대구시장'이라는 '기묘한 동맹' 슬로건을 앞세우는 배경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쨌든 이 슬로건은 큰 논란을 일으키며 선거의 핵심 쟁점이 되고 있다.

'유신의 딸' 박근혜와 '유신 피해자' 김부겸의 조합은 분명히 어울리지 않는다. 유신체제에서 탄압받은 그가 박정희컨벤션센터 건립을 공약한 것도 생뚱맞다. 진보 쪽은 유신 피해자를 생각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보수 쪽은 "취지는 좋지만 진정성이 떨어진다"며 선거용이라 비난한다. 이에 대해 그는 "박 대통령과 근대화의 공적을 민주화와 조합하면 대구의 낙후성과 정치적 고립을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낙후된 대구를 살리고 나라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는 지역과 이념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박근혜와 김부겸의 동맹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근혜와 김부겸의 기묘한 동맹 구호가, 새누리당이 주장하는 대로 야당시장'쪽박론'으로 끝날지, 대구발전의 새로운 틀을 만드는 야당시장'대박론'이 될지는 시민의 선택에 달렸다. 그러나 대구에 거대한 변화가 있어야 하는 것은 분명해 보이고, 김부겸-박근혜 동맹론이 이를 상징하고 있는 듯한 것은 사실이다. 오는 6월 4일, 대구 시민들이 어느 쪽을 선택할지 궁금해진다.

계명대 교수·국경연구소 소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