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장조로 이루어진 3박자의 느린 무곡풍의 단순한 곡을 주제로 30곡의 변주를 다채롭게 전개한 이 곡의 정식 명칭은 '2단 건반의 클라비어를 위한 아리아와 여러 변주'다. 바흐는 자신을 후원했던 백작이 심한 불면증으로 고생하는 것을 보고 이 곡을 작곡했다. 백작의 전속 연주가 골드베르크가 자주 연주했다고 해서 '골드베르크 변주곡'(하나의 주제를 다양하게 변화'발전시켜 만든 곡)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오늘은 같은 곡을 두 번 재녹음하지 않는다는 캐나다의 천재 피아니스트 글렌 굴드(1932~1982)의 마지막 레코딩인 1981년 음반으로 들어본다. 이례적으로 굴드는 이 골드베르크 변주곡만 두 번 녹음했다. 1955년 첫 녹음한 음반에서 23세 굴드의 종잡을 수 없는 리듬감과 힘이 느껴진다면, 1981년 녹음한 두 번째 음반에서는 원숙함과 동시에 헤아릴 수 없는 고독이 느껴지는 듯하다.
느린 속도의 아름다운 아리아에 천천히 매혹되면서 1번 트랙을 듣는다. '설국열차'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양들의 침묵' 등 많은 영화의 OST에 등장한 음악이다. 나에게도 떠오르는 순간이 있다. 아름다운 영상미와 음악으로 유명한 안소니 밍겔라 감독의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초반부, 여주인공 한나가 무너진 수도원의 폐허 속에서 발견한 피아노에 앉아 아리아를 연주하는 장면이다.
가장 유명한 것은 아리아지만 이어지는 곡들도 그 못지않게 아름답다. 바흐의 모든 기교와 편곡 능력을 변주에서 유감없이 드러낸다. 주제의 모방이 있는 활기있는 4변주, 정교하고 아름다운 선율의 13변주, 15변주의 안단테, 17변주의 활기있는 토카타가 인상적이다. 또한 개인적으로 굴드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들어했던 18변주의 유쾌한 카논, 25변주의 낭만적이고 환상적인 분위기, 28변주의 화려한 기교는 굴드의 독특한 곡 해석이 드러나는 것 같다.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원곡의 왜곡이라는 지적 등 많은 비평을 받긴 했지만 그가 드러내는 신선함과 개성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뚜렷한 템포 설정으로 변주곡이 요구하는 요점을 굴드는 자신만의 색채로 또렷이 들려준다. 가볍고 신선한 터치와 스타카토를 바탕으로 듣는 이의 의표를 찌르는 연주 또한 깊은 인상을 준다.
골드베르크를 감상할 때 굴드는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연주자다. 한때는 독특한 연주자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하나의 전형이 됐다. 골드베르크의 또 다른 연주자는 바흐의 명연주자 로잘린 투렉이다. "바흐 음악과 관련하여 내게 영향력을 미친 유일한 사람은 로잘린 투렉"이라고 굴드가 말했던 여성 피아니스트이다.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도 소홀히 할 수 없다. 각 변주를 다채롭고 우아하게 들려주는 쉬프는 굴드와 여러 면에서 대비되는 연주자로 알려져 있다. 하나의 변주곡이 각기 다른 피아니스트들의 손끝에서 또 다른 변주곡이 된다. 그리고 이 무수한 변주를 들어보는 일은 음악을 듣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클럽'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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