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월드컵을 기다리는 사람들] 한국의 세 브라질 남자들

"새벽 경기 알람 맞춰놓고 꼭 응원해야죠"

지난 2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축구장에 브라질에서 온 유학생들이 자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한자리에 모였다. 디에고 페라라, 에두아르도 라모스, 라파엘 데 파리아 씨. (왼쪽부터) 에두아르도가 입은 셔츠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팀인
지난 2일 계명대 성서캠퍼스 축구장에 브라질에서 온 유학생들이 자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한자리에 모였다. 디에고 페라라, 에두아르도 라모스, 라파엘 데 파리아 씨. (왼쪽부터) 에두아르도가 입은 셔츠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팀인 '바스코 다 가마' (Vasco da Gama) 유니폼이다.

지금 세계의 눈은 브라질에 향해 있다. 안 그래도 뜨거운 6월을 더 뜨겁게 달궈줄 월드컵이 이 나라에서 열린다. 더위라면 뒤지지 않는 대구에 브라질 남자 세 명이 살고 있다. 고국에서 열리는 축제를 먼 발치에서 바라봐야 하는 그 기분이 어떨까. 2일 오후 계명대 성서캠퍼스에서 라파엘 데 파리아(29), 디에고 페라라(24), 에두아르도 라모스(27) 씨를 만나 '축구 이야기'를 나눴다.

◆ 12시간 시차, "알람 맞춰서 축구 봐야죠"

이 남자들, 따로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노란색 브라질 국가대표 유니폼을 차려입고 나타났다. "사진도 찍어야죠?" 기자의 손을 잡고 축구장으로 이끌더니 "여기가 좋겠다"며 축구 골대 앞에 앉아 스스로 포즈를 취한다. 참 적극적인 남자들이다. 한국 정부 장학생으로 지난해 대구에 온 이들은 계명대에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있다.

브라질과 한국의 시차는 12시간. A조인 브라질 경기는 모두 한국 시각으로 오전 4시와 5시에 시작한다. 매일 오전 9시에 한국어 수업이 있지만 이 기간만큼은 축구가 먼저다. "알람을 맞춰놓고 일찍 일어나서 봐야죠. 지금 한국에 있으니까 한국 경기도 다 챙겨볼 거예요. 브라질에 있는 친구들이 표 사서 축구 보러간다고 자랑하는데 진짜 부러워요. 일생에 한 번 있는 기횐데 나는 TV로 경기를 봐야 하네요. 휴. "

곧이어 남자들은 자국 전력과 우승 후보 분석에 들어갔다. "지금 브라질팀은 아주 젊어요. 선수 평균 나이가 27.7세거든요. 4년 전에는 평균 나이가 29.2세로 팀이 전체적으로 늙었다는 비판이 있었는데 올해는 달라요. 주장인 티아고 실바도 실력있는 선수고요." 라파엘이 말했다. 세 사람 중 축구를 가장 덜 좋아한다는 디에고도 "독일과 이탈리아, 지난 월드컵 우승국인 스페인도 우승 가능성이 높고, 벨기에는 우승 후보는 아니지만 예상 외의 기량을 보여줄 것 같다"고 분석했다.

◆ 브라질, 마냥 축제 분위기 아니야

남미의 절반을 차지하는 브라질은 큰 땅덩이만큼 지역별로 기후차도 크다. 지금 브라질은 겨울이지만 마나우스와 포르탈레자 등 도시가 있는 북동부는 겨울철 평균 기온이 30℃를 웃돌 만큼 덥다. 이 같은 찜통 더위 탓에 최근 브라질선수협회는 오후 1시로 예정된 본선 24개 경기 시간을 오후 4시로 변경해 달라고 현지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으나 FIFA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디에고는 "불볕 때문에 브라질에서는 항상 오후 4시 이후에 프로 축구 경기를 한다. 오후 1시에 하는 경기는 체력적으로 선수들에게도 부담일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현재 브라질은 마냥 축제 분위기는 아니다. 월드컵을 앞두고 시위와 파업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이하 리우)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교사와 버스 기사, 박물관 직원 등 각 계층이 예산만 낭비하는 월드컵을 비판하고 있으며, 브라질 주요 경기장 앞에는 'Nao vai ter copa!'(No Worldcup!)라고 적힌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다고 영국 일간지 가디언이 보도했다.

이들 세 명은 "이유있는 시위"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라파엘은 "처음에 정부는 월드컵 개최 비용 70%가 사기업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결국 시민 세금으로 채워졌다. 몇년새 버스비와 의료비, 브라질 물가는 계속 오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며 "이 돈이면 더 많은 학교를 짓고, 더 나은 의료 서비스에 투자할 수 있는데 한 번 쓰고 말 경기장을 짓는데 세금을 낭비하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글 사진 황수영 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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