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이후 어린이날, 어느 대도시 어린이공원에 가 보았습니다. 생때같은 아이들을 300여 명이나 잃은 참사가 아직 진행 중인 상황에서 맞은 어린이날이어서 눈에 띄게 달라진 어린이 안전의식을 기대하고 둘러보았습니다. 아이를 태우고 유모차를 모는 부모나 전동놀이차를 타는 청소년이나 놀이차를 빌려주는 업소 주인이나 안전 의식은 세월호 사고 이전이나 달라진 게 없어 보였습니다. 승용차 주차장 가까이에 있는 어린이용 전기자전거 대여장은 주차장에 들락거리는 승용차들과 뒤엉켜서 자칫 교통사고가 날 위험성이 커 보이는데도 운전자들은 태연하게 곡예운전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운전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 공원에 놀러 온 부모들이었습니다. 최근 모 방송국에서 실시한 조사를 보면 국민 10명 중 9명이 '대한민국이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대답했습니다.
답변자 10명 중 8명은 대책으로 예산과 인력을 늘리라고 정부에 주문했습니다. 제도가 달라지고 공무원이 달라지고 예산이 늘어나야겠지요. 그래서 대통령의 대국민성명 발표에 이어서 국가 개조 수준의 대책이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부든 개인이든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보입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대형 교통사고를 유발할 수 있는 과적 화물차량이 얼마나 줄어들었을까요? 2007~2012년 화물차 사고로 인한 사망자가 하루 3명꼴인 연평균 1천269명에 달합니다. 각종 산업현장에서 사고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망자 수가 G20 국가치고는 창피한 수준으로 많습니다. 근로자 1만 명당 업무상 사고로 인한 사망자 수가 0.71명으로 산업재해 예방을 제일 잘하고 있는 독일(0.18)과 그다음으로 잘하는 이웃 일본(0.22)에 비해 3~4배나 됩니다.
노인요양시설 중에서 그동안 비상계단에 수북이 물건을 쌓아놓아 화재 발생 시 탈출을 방해할 수 있었던 것들을 말끔히 치운 곳은 얼마나 될까요? 병원 앰뷸런스가 사고 현장에서 응급실까지 환자를 이송하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선 승용차들이 길을 빨리 비켜줘야 하는데, 이런 선진형 운전자들이 참사 이후 눈에 띄게 늘어났을까요? 아이들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설학원의 원장, 건물주들 중에서 그동안 건성으로 처리해온 소방시설을 점검하고 기한을 넘긴 소화기를 교체하기로 한 분들이 많아졌을까요?
바다 교통의 참사 이후 육상교통, 그중에서도 기본인 보행교통 질서 수준은 높아졌을까요? 한국은 인구 10만 명당 무단횡단 등 보행자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많은 부끄러운 나라입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불안해서 못 살겠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공동체 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무너졌다는 얘기입니다. 어린 승객을 방치하고 앞장서 뛰어내린 선장과 승무원들 같은 인간들이 곳곳에 널려 있을 것이라는 불신이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세계적인 공분과 비웃음을 산 세월호 선장과 승무원들은 아마 이런 가정교육을 받고 자랐을지도 모릅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목숨이 걸린 일이 벌어질 수 있는데, 그런 일이 생기면 우선 너부터 몸을 피해라. 옆에서 '살려달라'는 목소리가 들려도 귀를 막아라. 양심의 가책은 잠시이고 인생은 길다. 임진왜란 의병도 항일의사도 죽고 나면 소용없다. 너부터 살고 봐야 한다." 이런 식으로 말입니다.
선장이 어린 학생들을 구하기는커녕 맨 먼저 배를 벗어나는 참담한 장면을 TV로 지켜본 우리들. 그 이후 나 자신부터 사회적으로 부끄러움이 없는 시민이 되고, 내 자식부터 책임감 있는 사람으로 키우기로 마음을 다잡았는지 자문해볼 시간입니다. 친구들 모임에서 참사에 대해 얘기하면서 '우리 모임이라도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고 의견을 모아본 적이 있나요? 백화점 에스컬레이터에서 위험하게 뛰는 아이들을 남의 자식이라도 엄하게 꾸짖고, 교통규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아이를 다시는 그러지 못하게 혼쭐을 내는 엄마들이 곳곳에 눈에 띄나요? 이런 질문에 당당하게 '그렇다'고 답변하는 사람들이 다수이면 국가 개조는 다 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동우/경주세계문화엑스포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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