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권영진과 김부겸 곧 만나야 한다

지난 몇 주 동안 나는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 캠프의 전략을 이끌면서, 1996년 미국 대통령 후보 클린턴 캠프의 전략가 딕 모리스가 이번 대구시장 선거를 보았다면 무릎을 쳤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지지했던 김부겸 후보는 물론 권영진 후보까지 약속이나 한 듯 딕 모리스의 전략을 기조로 삼았기 때문이다.

딕 모리스의 전략은 한마디로 '중간층 껴안기'(triangulation)다. 이 전략은 자기 진영과 상대 진영의 '중간'을 껴안는 것이 아니라 두 진영의 꼭짓점 위에 새로운 꼭짓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것이 삼각도형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이름을 그렇게 붙인 모양이다.

선거운동이 시작되었을 때 두 후보가 제시한 슬로건에 대해 시민들이 다소 어리둥절했던 것도 그 전략 때문이다. 보수성향 후보인 권영진은 '대구혁신'이라는 진보의 표상을 내걸었고, 진보성향 후보인 김부겸은 '대구 대박'이라는 보수의 가치를 제시했다.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 나는 그것을 기존 '진영정치의 한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김부겸과 권영진의 몸부림이었다고 본다. 김부겸은 대구의 진보진영이 이대로 가면 고립된 섬이 될 것이라는 심각한 우려를 가지고 외로운 정치실험을 시작했고, 권영진은 대구의 보수진영이 이대로 가서는 큰일이라는 위기의식을 가지고 대구정치를 시작했다.

김부겸과 권영진은 지역과 나라가 둘로 쪼개져 싸우는 것을 넘어서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권영진은 선거운동 기간 내내 혁신, 변화, 소통이라는 진보지향적 가치를 강조했고, 김부겸은 선거운동 기간 틈만 나면 책임, 능력, 신뢰라는 보수지향적 가치를 외쳤다.

권영진, 김부겸 캠프는 상대편 지지자들에게 익숙한 '수용적 이슈'를 내걸며 지지를 확장해갔다. 권영진은 대구를 바꿀 다섯 개의 혁신과제를 내걸면서 젊은 층을 공략했고, 김부겸은 대통령과 협력하여 대구를 발전시키겠다는 안정감 있는 대안을 제시하며 나이 많은 층에 지지를 호소했다.

이 전략의 딜레마는 각각의 전통적 지지층으로부터 제기되는 비판이다. 권영진과 김부겸도 그랬다. '시민과 함께 대구를 바꾸겠다'고 줄기차게 주장한 권영진은 이 지역 보수 본진으로부터 협력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다. '박정희 대통령과 화해하겠다'고 줄기차게 주장했던 김부겸 역시 이 지역 진보 본진으로부터 날카로운 추궁을 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흔들리지 않았다.

김부겸과 권영진은 상생정치를 했다. 두 후보는 강력하고 민감한 이슈를 던지면서 뜨거운 전선을 만들고, 지지자들을 강력하게 동원해내는 '갈라치기' 전략의 유혹을 끝까지 떨쳐냈다. 내가 지지했던 김부겸은 가슴 아픈 패배에도 불구하고 박원순, 안희정과 함께 대권주자의 반열에 이름을 올렸고, 당선자 권영진은 정당지지도에 턱걸이하는 승리에도 불구하고 원희룡, 남경필과 함께 당당한 개혁시장으로서 시선을 모으고 있다.

오른쪽의 권영진이 왼쪽으로, 왼쪽의 김부겸이 오른쪽으로 옮겨가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동의의 기반'을 만들고자 했던 전략은 기존 정당으로부터 지지가 부족한 권영진과 기존 정당의 사회적 기반이 약한 김부겸이 단순히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고안한 책술만이 아니기 때문에 아름답다. 그것은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정치 철학과 성정의 표현으로 보인다. 이번 선거를 통해 김부겸은 합리적 진보의 지도자로서, 권영진은 성찰적 보수의 지도자로서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주었던 것 같다.

김부겸과 권영진은 앞으로 대구를 대한민국 새로운 정치의 중심으로 만들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권영진과 김부겸이 곧 만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부겸이 축하 난을 보냈다고 하니 권영진이 화답할 차례다. 대구의 발전을 위해 두 사람이 손을 마주 잡고 뛰는 통 큰 모습을 봤으면 좋겠다.

김태일/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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