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구시장 선거에서 김부겸 후보는 낙선하고도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김 후보는 새정치민주연합 간판을 달고 출마해 40.3%의 지지를 얻었다. 젊고 참신한 이미지를 가진 권영진 당선인도 혼쭐난 표심이다. 역대 대구시장 선거에서 전통 야권 후보가 이만한 지지를 받은 전례가 없다. 그래서 김 후보의 40.3%는 승패를 떠나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첫째는 대구가 변화를 갈망하고 있다는 것이고, 둘째는 그럼에도 여전히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김 후보의 낙선은 호감도 높은 그의 '인물론'에도 불구하고 야당 후보라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상된 일이다. 일각에서는 무소속으로 출마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란 얘기도 들린다. 이 같은 대구 정서를 모를 리 없지만 김 후보는 야당 후보를 자처하며 선거를 치렀다.
이번만이 아니다. 2년 전 19대 총선 때는 3선까지 안겨준 경기 군포 지역구를 버리고 대구 수성갑에 내려와 야당인 민주통합당 후보로 경제통 이한구 의원과 맞붙었다. 낙선했지만, 당시 김 후보는 야권 후보로서 40.42%의 높은 득표율로 관심을 모았다.
'야당의 무덤' 대구에서 야당을 고집하는 김 후보의 속내는 무엇인가. 김 후보는 2011년에 자서전 '나는 민주당이다' 를 썼다. 민주당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작심에서 제목을 그렇게 지었다. 자서전에는 '황야' 대구를 선택한 그의 의중을 엿볼 수 있다. "지역주의가 한국 정치의 근원적 균열이자 망국적인 병폐인 것은 물론이거니와, 특히 나 같은 경계인에게는 엄청난 고통이며 장벽이었다. TK 출신이 민주당 정치를 한다는 것은 웬만한 강심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주의라는 악연을 끊으려고 몸부림쳐 온 것이 나의 정치 역정 그 자체가 되어 버렸다."
김 후보와 같은 소신으로 대구를 찾은 야당 정치인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04년, 당시 새천년민주당의 거물 조순형 의원이 17대 총선에서 지역주의 벽을 넘겠다며 5선을 한 서울을 떠나 수성갑에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12.2%의 득표율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로 낙선했다. 4년 뒤 18대 총선에서는 열린우리당에서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유시민 후보가 수성을에 출사표를 던졌다. 무소속으로 출마했지만, 야권 인사인 그는 32.6%의 지지만 이끌어내고 역시 낙선했다. 중량감 있는 야권의 두 정치인이 대구에서 지역주의 타파를 외쳤으나 모두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서울로 되돌아갔다.
김 후보는 이런 대구 바닥에 자청해 찾아왔다. 지난 총선에 이어 이번에도 야당의 이름으로 문을 두드렸다. 또 떨어졌지만, 대구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 한다. 여당 텃밭에 언젠가는 야당의 깃발을 꽂아보겠다는 의지다. 정치적 소신이라지만 분명히 가시밭길이다. 어찌 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 하는 '바보' 김부겸이다. 그 계란에 유권자 40.3%가 마음을 열었다.
그렇지만, 대구는 여전히 야권이 발붙이기 어려운 동네다. 이번 선거 역시 여당 싹쓸이다. 여당 국회의원에, 여당 단체장에, 지방 의회마저 대부분 여당의원 일색이다. 수십 년을 이렇게 지내다 보니 지도층도, 시민도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다. 지역 인물은 자연스레 여권에 줄을 설 수밖에 없고 야권에는 인물을 찾을 수도, 키울 수도 없는 이상한 도시가 됐다. 경제만 침체한 게 아니라 야권에 보험도 들 수 없는 도시가 됐다.
대구사람들이 언제부터 왼손잡이를 싫어했나. 그래서 얻은 게 얼마나 되나. 신천을 나는 새도 한쪽 날개로 날지는 않는다. 편 가르기에 익숙해진 정치적 고정관념일 뿐이다.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지금 대구에 필요한 것은 능력 있고 일 잘하는 사람이다.
대구시민들이 진정 변화를 원한다면 먼저 여권과 야권이 공존할 수 있는 도시로 만들어야 한다. 서울이 보수와 진보로 치열하게 논쟁한다고 망하지는 않는다. 안정적 보수와 진취적 개혁이 적절히 어우러진 도시가 오히려 활력을 내뿜는다.
권영진 당선인에 거는 기대가 어느 때보다 크고 진중하다. 권 당선인이 변화와 개혁의 공약을 제대로 실천하려면 40.3%의 저쪽 민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권은 물론 야권 인사도 부지런히 만나고 소통하기를 권한다. 지도층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동시에 시민들의 몫이기도 하다. 40.3%의 민심에 대구의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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