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사표(死票)

선거가 끝나면 정당이나 언론들은 나름대로 선거 결과에 대해 이런 저런 말들을 한다. 그중 가장 흔하게 듣는 말 중 하나가 "부동층의 사표(死票) 방지 심리가 작용을 했다", "선거 막판 지지층이 결집을 했다"와 같은 말이다. 여기에서 '사표'란 낙선한 후보자에게 던진 표를 가리킬 때 쓴다.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 보면 될 사람에게 표를 던지지 않은 것은 말 그대로 죽은 표, 무의미한 표, 무가치한 표라는 것이다. 사표라는 말은 잘못 규정된 말 하나가 얼마나 현실을 왜곡하는지를 보여주는 예가 될 수 있다.

현실을 한 번 생각해 보자. 지방선거 전에 서울에 있는 선생님들은 한 시사 주간지에 나온 '악수가 손에 붙는다'는 야당 대구시장 후보의 기사를 보고 나에게 대구 여론이 진짜 그렇냐고 물었다. 나는 대구가 조금씩 변하고 있지만 아직은 아니라고 답을 해 주었었다. 사실 대구의 선거 결과에 대해서는 선거를 치러 보지 않아도 누구나 쉽게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긴장감도, 흥미도 없으며 그래서 현재의 개념대로 사표를 규정한다면 여당을 지지하지 않는 표는 죽은 표가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당연히 투표율도 낮은 것이다. 그렇다고 단순히 사표를 방지하기 위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표를 지지하지도 않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것은 정치권에 '지지층이 결집'했다는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

엄밀하게 말하면 죽은 표, 무의미한 표는 없다. 확고한 여당 지지자들의 표는 자신들의 의사를 분명히 표현하는 수단이 된다. 그런 확신이 없지만 여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사람들은 이왕이면 당선될 사람에게 힘을 실어주겠다는 의사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낙선자들에게 던진 표는 좀 더 다양한 의미가 있다. 확고한 야당 지지자들의 표는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표현하는 수단이다. 그리고 대구도 보수 일색이 아니라 다양한 정치적 경향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야당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지만 정부와 여당이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사의 표현일 수 있다. 또는 여당 야당을 떠나서 당선이 안 될 줄은 알지만 참 아까운 사람이라서 용기를 잃지 말았으면 하는, 혹은 선거 비용이라도 건져서 다음 기회를 노렸으면 하는 의사의 표현일 수 있다. 투표장에 가서 무효표를 만들어 내는 것도 정치권에 대한 나의 불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수단일 수 있다.

투표장에 들어가 행사한 모든 표는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표에 대해서 죽은 표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온당하지 못하다. 대신 진짜 죽은 표, 무의미한 표는 따로 있다.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의 생각이 담기지 않은 표, 바로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표이다.

능인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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