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생활정치가 절실하다

마침내 민선 6기 지방자치단체가 출범했다. 온 나라가 세월호의 슬픔 속에서 정당 간 정책공약 경쟁도 없이 치러진 선거를 거쳐 출범하는 지방정부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제1공약으로 내세우면서 다른 공약은 쟁점조차 되지 못했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각 당이 어떤 정책을 발표했는지를 하나라도 기억하는 국민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세월호 비극을 빚어낸 근본적인 문제를 극복해낼 수 있는 해법이 제시된 것도 아니다. 억압적인 국가 권력과 팽창적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만들어내는 문제점들은 이미 젊은 대학생들의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자조적인 호소를 통해 공감대를 얻고 있었다. 국정원의 선거 개입 논란, 밀양 고압송전탑 문제, 철도 민영화 문제,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결국은 민주주의를 훼손하고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자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런 와중에 세월호 사건이 발생했다.

세월호 사건은 과도한 국가주의와 관료제의 한계, 이익 극대화와 효율성 중시의 가치가 얼마나 우리의 일상생활을 불안하게 만들며 국민의 생명 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세월호 사건을 거치고 난 후에 치러진 선거에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여야 당선자의 수가 다소 달라졌을 뿐이다. 중앙정부의 권력을 지방으로 이양하거나 지방정부를 획기적으로 개편하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재벌 중심의 경제 구조, 관료화된 정당에 기반한 대의제 민주주의, 효율성과 경쟁에 초점을 맞춘 가치체계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성을 갖기 어렵다. 사회적 불평등이 점차 확대되고 있으며, 성장의 사다리는 점차 취약해져 계층이 고착화되고 있다. 생태적으로는 지구온난화와 에너지 고갈의 위기가 점차 다가오고 있다. 모든 문제의 책임이 개별적인 부담으로 귀결되면서 정치는 사라지고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만 남게 되었다. 교육과 보육, 일자리, 나아가 지역 간 개발과 산업 유치까지 적자생존과 승자독식의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갓 출범한 민선 6기 지방정부와 지방의회는 기존의 정치적인 이념이나 국가주도형 정치체제가 갖는 구조를 근본적으로 탈피해야 한다. 한편으로는 중앙정부의 독점적인 권력과 재원을 지방으로 이양받을 수 있도록 지방정부 간 힘을 합해야 하겠지만, 지방정부 스스로 자각의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스스로 성장이나 개발과 같은 총량적인 목표를 수정하고 주민들의 삶의 질이나 행복을 최우선적인 목표로 재설정해야 한다. 주민들이 매일 마주치는 일상생활의 현장에서 함께 합의할 수 있는 공공성의 가치를 찾아내고 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여건과 절차를 마련하여 생활정치를 복원해야 한다.

민선 6기 지방정부 집행부와 지방의회는 중앙정치의 대리인이 아니라 지역에서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내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비록 양 정당이 지난 대선에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를 폐지하겠다던 여야 대통령 후보들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친 채 정당공천을 통해 후보를 정했지만, 더 이상 지방을 중앙정치의 식민지로 만드는 데 앞장서는 총독이 되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가 경쟁을 통해 강요하는 획일성을 탈피할 수 있도록 색깔 있는 정책을 생산하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지방정부에서 생활정치의 복원은 지방정부의 단체장과 지방의회만의 힘으로는 어렵다. 수많은 시민들이 생활현장에서 사회구조의 한계를 자각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협력하고 연대할 때 실현될 수 있다. 지역 내 연대의 틀을 넘어 전국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안목을 넓힐 때 내 생활 속에서 세계와 지구의 미래 문제를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브라질의 꾸리찌바나 독일의 프라이부르크, 스페인의 몬드라곤과 같은 도시들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이유는 비록 작은 교통문제나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했지만 시민들이 자각했고 협력했고 마침내 성과를 통해 지구의 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는 여전히 경제 회복과 투자 활성화를 명분으로 대폭적인 규제 완화와 부동산 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제 출범하는 민선 6기는 전국적인 획일화인가, 새로운 생활정치 시대 개막인가의 기로에 서 있다.

변창흠/세종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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