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삼합관계

날씨가 점점 무더워지는 저녁, 입맛을 잃어가는 짝꿍이 "숙제다"면서 별미로 가끔 먹는 삼합을 주문해온다. 폭 삭은 홍어 한 점에 삶은 돼지고기, 맛이 숙성된 묵은지를 살짝 얹어 시원한 막걸리 한 사발을 들이켜는 여름밤은 그 아무리 극성의 무더위도 이겨내는 힘이 불끈 생긴다. 단독주택으로 이사 오고부터 감나무가 살랑이는 마당 가에 평상을 하나 마련해 두었는데, 정다운 몇몇 지인과 함께하는 이런 여름 만찬은 답답한 거실보다는 평상이 딱 제격이다. 손사래를 치며 솔솔 기어올라오는 마당귀퉁이의 유기농 깻잎향이랑 황기향이 입맛을 확 끌어당길 때면 초대하지 않은 달님도 어느새 가까이와 분위기 메이커 되어 달아오른다. 음식을 준비하면서 얼핏 떠오른 생각인데 삼합(三合)이란? 세 가지를 합한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세 가지의 궁합이 잘 들어맞는다는 더 깊은 의미로 새겨 읽어도 좋을 듯싶다. 하여 삼합이란? 비단 음식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심 속에서 벗어나 한 달에 한 두어 번 산행을 떠나다 보면, 초록 논바닥에 바람이 일렁거리고 논두렁과 밭두렁에 핀 잔잔한 야생화가 지친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바람, 햇볕, 꽃들도 환상의 삼합이겠으나 필자의 눈에 들어온 '삼합'이란 바로 흙 묻은 무명옷을 둥둥 걷어붙인 들판에서 무던한 근성 하나로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는 땅, 농부, 소가 참으로 코끝이 찡해오는 '삼합'이란 생각이 든다.

소가 주인을 어무이 어무이 따르는 것은/ 주인이 논바닥에 함께 발 딛고 있기 때문이다

땀 흘리며 바닥에서 함께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높은데서 부리지 않고 함께 호흡을 맞추기 때문이다/ 고된 노동 속에서도 서로의 눈빛이 그렁그렁 한 것은/ 심전(心田)에서 희로애락을 함께 했기 때문이다/ 무지렁이에서 똥 누는 모습까지 다 보여줬기 때문이다// 우둔하게 서로 주인으로 섬기는/ 고지식한 땅, 고지식한 소, 고지식한 농부/ 과묵한 근성이 깊이 발효된/ 아 참, 지독한 삼합이네 그려~// 전문

우리의 관계도 삼각이 아니라 삼합관계가 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려면 사리사욕(私利私慾)을 다 내려놓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금의 농촌 현실은 점점 기계화되어 가고 있어 무척 다행이란 생각이 들지만 가끔씩 일탈했을 때, 늙은 들길이 몰고 가는 소에서 워낭소리를 딸랑딸랑 들을 때면 마른 논에 물 고이듯 마음이 참 평화롭고 넉넉해진다. 오랜 세월을 함께해온 농부(노인)의 베스트 프렌드인 이 소는 의도적으로 뒷걸음쳐, 노인으로 하여금 소를 부리는 목소리가 점점 우렁차게 내리치도록 하고 있다. 점점 쇠약해져 가는 노인을 어떻게든 일으키려 애쓰는 소의 시근이 참, 백 근도 더 넘는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박 숙 이(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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