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내 인생의 멘토] <3>권영세 안동시장-배우자 송채령

'부부 동행' 인생의 길 위에서 희로애락 함께하다

권영세 안동시장과 권 시장의 든든한 후견인이자 영원한 멘토인 부인 송채령 씨. 부부는 모처럼 만에 안동시청 솔숲공원에서 마주 앉았다. 엄재진 기자
권영세 안동시장과 권 시장의 든든한 후견인이자 영원한 멘토인 부인 송채령 씨. 부부는 모처럼 만에 안동시청 솔숲공원에서 마주 앉았다. 엄재진 기자

권영세(62) 안동시장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안동 길안면 현하리 산골짝에서 태어나 오랫동안 행정 전문가로 일하다 재선 안동시장으로 근무 중이다.

60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숱한 멘토와 길라잡이로 손 내밀어 준 사람들이 즐비하다. 산골학교 시절 권 시장의 총명함을 살피고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경북중학교 진학을 이끌어 주셨던 은사님들, 경북고 시절 함께 경쟁을 벌였던 숱한 친구들, 당연하게 생각했던 서울대 진학이 좌절되고 가정형편을 생각해 영남대에 진학하면서 곁에서 용기를 주었던 선생님들, 대학을 졸업하고 행정고시를 통해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맺었던 많은 인연이 모두 권 시장에게는 잊을 수 없는 멘토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권 시장이 으뜸 멘토로 꼽은 사람은 다소 의외의 인물이었다. 바로 평생의 반려자인 부인 송채령(59) 씨다. 삶의 고비마다 곁에서 지켜주고, 힘이 되어주고,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고 길을 걸어갈 때에도 곁에서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오롯이 자신을 위해 손잡아준 사람이다. 이 때문에 권 시장에게 최고의 멘토는 부인 송 씨다.

◆대학입시 좌절 그리고 절치부심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권영세 안동시장은 지방대 출신이라는 중앙 공직사회의 보이지 않는 핸디캡을 특유의 성실함과 꼼꼼함, 철저함으로 극복해낸 인물이다.

안동 길안면에서 초등학교를 마친 뒤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권 시장은 중학교 때부터 대구 유학생활을 했다. 그야말로 깡촌에서 나온 촌놈이 경북중'경북고 등 지역 최고 명문학교에서 줄곧 1, 2등을 차지할 정도의 수재였다. 이 때문에 주변에서는 당연히 서울대에 입학할 줄 알았다.

하지만 권 시장은 서울대에 들어가지 못했다. 첫 번째 좌절이었다. 권 시장은 곧바로 현실을 직시하고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4년 동안 장학생으로 영남대 법학과를 다녔다.

졸업과 동시에 권 시장은 길안면에 있는 용담사라는 절을 찾았다. 그야말로 절치부심. 1년여를 꼼짝도 하지 않고 고시 준비에 들어갔다. 결과는 이듬해인 1977년에 21회 행정고시에 당당히 합격, 공직생활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로 권 시장은 정통 엘리트 행정관료로 순탄한 공직생활을 해왔다. 하지만 순조로웠던 공직생활 이면에는 말하지 못했던 우여곡절이 많았다.

"공직생활과 민선 안동시장으로 재선 임기를 시작하기까지 숱한 멘토들이 있었죠. 하지만 곁에서 힘이 돼주었던 진정한 멘토는 지금의 아내였어요. 이 사람이 없었다면 순탄한 공직생활과 굴곡 많았던 삶을 견딜 수 있었을까 하는 하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어려울 때 힘이 돼준 아내

권 시장과 송 씨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친구의 소개팅 자리에 우연히 함께했던 권 시장과 송 씨는 한눈에 서로에게 호감을 느꼈다. 당시 권 시장은 졸업 후 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고, 송 씨는 대학 4학년이었다. 송 씨는 그때를 이렇게 회상했다. "첫눈에 굉장히 귀공자 스타일이었어요. 깡촌에서 자란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잘 정돈되고 온화한 성격으로 '내 삶을 맡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때부터 송 씨의 구애가 시작됐다. 최소한 2주에 한 번씩은 버스를 타거나, 친구 차를 얻어 타고 권 시장이 공부하고 있던 안동 길안의 용담사를 찾았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방해되지 않을까 염려도 했지만, 정성스레 음식을 만들고 따스함을 전해주던 송 씨의 방문이 권 시장에게는 청춘 만남의 설렘과 함께 한줄기 희망'용기가 돼 주었다.

"32살에 홀로 되신 어머니와 삼형제의 맏이라는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공부하는데 청춘을 보냈어요. 아내가 내 곁에서 조용히 챙겨준다는 사실이 공부에 전념할 수 있는 안정을 가져다 준 셈이 됐습니다." 권 시장의 부인 자랑은 끝이 없었다.

송 씨는 권 시장에게 격려해주고, 잘못을 지적하고, 기쁨을 함께하고, 슬픔과 어려움을 나누는 든든한 후견인, 영원한 멘토다.

◆함께여서 이겨낼 수 있었던 위기

이들은 1982년 11월 4일 결혼했다. 권 시장이 경북도에 근무하던 시절이었다. 슬하에 1녀1남을 뒀다. 권 시장이 1995년부터 4년여 간 대통령비서실 등 청와대에 근무할 당시 송 씨는 새벽밥을 짓고, 지하철역까지 거의 매일 남편의 출퇴근 뒷바라지를 했다. 송 씨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자녀를 키우면서, 공직자의 아내로서 고단함을 잘 견뎌냈다.

"사실 아이들이 어떻게 자랐는지 모를 정도로 일에만 매달렸어요. 박봉의 공무원 월급으로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아이 교육을 하면서 단 한 번의 섭섭함이나 불만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저를 편안하게 해 주었어요." 권 시장은 이 말을 하며 송 씨의 손을 꼭 잡았다.

권 시장이 안동 부시장 시절, 큰딸에게 갑작스레 찾아온 암 선고는 자칫하면 공직생활을 중단해야 할 위기였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딸에게 '임파선암'(림프종)이 선고된 것.

송 씨는 남편이 일에 소홀할까 봐 딸의 투병생활을 혼자서 감내했다. 안동과 서울을 숱하게 오르내리고,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는 2년여 동안 두려움과 절망을 혼자 참아냈다.

"다시 생각하기 싫을 정도로 아픈 시절이었어요. 하지만 그때는 안동 부시장이라는 직에 어울리는 남편의 모습을 기대하며 저 혼자 딸의 투병을 감당할 수 있었어요."

"정말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마움과 감사한 마음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아들이 입은 옷 소매에 새까맣게 때가 묻은 것을 보고 아들에게 소홀했다는 마음에 혼자 울었다는 얘기를 아내로부터 들었어요. 전형적인 우리나라 어머니의 모습을 지닌 사람입니다."

◆시장 남편보다 인기 좋은 아내

대구시 행정부시장을 끝으로 정년 3년을 남긴 시점에 민선 안동시장에 도전할 때도 그랬다. 처음에는 부인이 반대했다. 하지만 송 씨는 남편의 설득으로 마음을 바꿔 최고의 후원인이 됐다.

집사람에서 정치인의 아내로 탈바꿈해야 했다. 새벽부터 후보자의 아내로 표밭을 누비면서도 자기 자신은 철저히 후보자였던 남편 뒤에 숨었다. 모든 공은 남편에게 돌렸고, 격려와 칭찬을 남편이 듣도록 했다.

이 같은 그림자 내조는 권 시장이 민선 단체장으로 일하는 동안에도 계속됐다. 남편인 권 시장이 부르짖는 '행복 안동'을 위해 권 시장이 직접 챙기지 못하는 여성계와 문화계는 물론 어두운 곳, 구석진 곳, 소외된 곳을 어루만지는 역할을 부인 송 씨가 하고 있다.

"시장인 저보다 더 인기가 좋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가슴 한편엔 든든함이 있습니다. 거의 매일 집에 들어가 아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것으로 하루 일과를 마무리합니다. 그만큼 아내는 과거도, 지금도, 앞으로도 나에겐 든든한 후견인이면서 멘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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