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1월 22일 대구시 중구 대봉동에서 자유당 시절 교원노조 사태로 교단을 떠났던 전직교사 아버지의 삼남이녀 중 막내로 태어나 다섯 살 때인 68년 서울로 올라갔다."
이제 대구를 대표하는 명소가 된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초입에 적혀 있는 가객 김광석에 대한 소개 글의 첫 문단이다. 이 짧은 문장 안에 숨어 있는 대구의 소거된 기억을 복각해본다.
1960년 2월 28일 일요일 대구 수성천변에서 야당 정부통령 후보 유세가 있는 날이었다. 이승만 정권은 학생들의 유세장 방문을 막고자 임시등교령을 내렸다. 학교에 묶어두면 학생들이 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으리라 여겼다. 하지만 얄팍한 수는 분노를 불렀다. 학생들은 거리로 나섰고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된 2'28 대구학생민주의거가 시작됐다.
이날 경북대 사대부고에서도 학생들의 분노가 비등했다. 하지만 권력 앞에 왜소했던 교사들은 학생들을 막았다. 당시 30대의 교사 이목 선생도 학생들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 이때 2학년 학생 한 명이 선생에게 항변했다. "선생님, 저희를 왜 막으십니까? 수업 때는 민족과 정의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까?" 제자의 힐난에 선생은 끝내 제자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우리는 비겁하지만 너희는 용감해야지"라며 하염없이 울었다.
1960년 2월의 대구는 그렇게 뜨거웠다. 하지만 다음 달에 치러진 정부통령 선거에서 교사들은 왜소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교실에서는 수업참관 명목으로 학부모를 동원, 여당 시책을 선전해야 했다. 그리고 3'15 부정선거를 독려하는 보조원이 되기도 했다. 얕은 간계는 걷잡을 수 없는 분노를 불렀다. 4'19 혁명이 일어났다. 선생들의 눈앞에서 무수한 제자들이 피 흘리며 쓰러졌다.
교사들도 더는 "가만히 있으라"는 말을 할 수도, 들을 수도 없었다. 앞서 간 학생들에 대한 부채감은 '교육이 정권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60년 5월 7일, 대구의 교사 60여 명이 교원노동조합을 결성했다. 불과 두 달 만에 교원노조는 대구에서 전국으로 확대됐다. 전체 교원의 수가 10만 명도 안 되던 시절, 조합 가입자는 2만 명을 넘겼다. 이목 선생은 사무국장을 맡아 교육 민주화의 싹을 일구는 데 앞장섰다.
그리고 일 년 후인 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박정희 정권은 군소정당 및 사회단체를 해산했다. 그 과정에서 관련자들을 용공혐의로 체포했다. 만 하루 동안 2천 명이 입건됐다. 그중 1천500명이 교사였다. 하지만 교사들의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 정권은 월남한 교사에게 간첩혐의를 씌웠다. 그 교사는 무죄 방면됐으나 고문 후유증과 억울함을 견디지 못해 얼마 후 자살한다. 교원노조 간부들을 처벌할 명분이 점점 사라지자 '특수범죄처벌에 관한 특별법 6조'를 소급 입법했다. 그 결과 교사들은 상관없는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단심으로 끝난 혁명재판에서 이목 선생 역시 징역 10년을 언도받고 5년 간 수감생활을 했으며 교직도 박탈당했다.
엄혹한 세월은 좀체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선생은 외로이 교원노동조합운동을 처음 만들 때의 정신을 이었다. 삼십 대였던 선생이 제자의 힐난에 통곡을 한 지 40년이 지난 1999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합법화된다. 금기시되던 대구의 교원노조운동은 그제야 한국 민주화 역사의 첫 장 중 하나로 복원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목 선생은 단심으로 끝난 위헌적 원심에 대해 50년 만에 항소를 했다. 2010년 4월, 대구지방법원은 재심에서 멍에처럼 씌어 있던 '특수반국가행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다. 선생이 89세 되던 해의 일이다.
60년 전, 그때 학생들은 분연히 일어섰다. 그때 교사들은 부끄러워하며 학생들에게 "이제 우리가 앞장서겠다"고 했다. 지금, 압도적인 경쟁률을 뚫고 교단에 입성한 젊은 교사들은 교과 외 잡무에 시달리며 스스로 돌볼 겨를조차 없다. 초등학교부터 줄 세우며 부모의 욕망을 대리해 찍기 능력을 앙양해온 학생들은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어 압도적인 경쟁률을 뚫는 순환을 반복하고 있다. 이 살풍경 안에서 학생들은 교사들에게 무엇을 묻고 있으며, 오늘의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무어라 이야기하고 있을까?
이현석/의사·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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