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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부] 상주 화령장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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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 2차 세계대전을 통틀어 민주진영이 승리한 가장 통쾌한 전투는 뜻밖에도 경북 상주 화령장 전투이다. 1950년 7월 17일부터 21일까지 딱 5일간 상주 상곡리'동관리 일대에서 벌어졌던 화령장 전투에 대해 미 군사고문관 스카레기 소령은 "1, 2차 세계대전을 다 겪어보았지만, 이처럼 통쾌한 전투는 처음"이라고 평했다.

북한은 '남침 50일'이자 미군이 한반도에 구원군을 상륙시키기 전인 1950년 8월 15일 서울에 통일 인민정부를 수립하겠다며 우리 군을 파죽지세로 밀어붙였다. 7월 17일에 벌어진 상주 상곡리 전투, 20일에 벌어진 동관리 전투를 합쳐서 일컫는 상주 화령장 전투가 없었다면 우리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 상주 화령장 전투가 있었기에 결국 인천상륙작전(9월 15일)으로 이어진 낙동강 방어선 전투까지 연결되는 시간을 벌 수 있었고, 우리 군의 사기는 올라갔다.

당시 우리 군은 군사지도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이 수립되고, 미군들이 사용하는 군사지도를 빌려쓰고부터 지형지물을 이용한 부대 배치의 정확성을 기할 수 있었지만, 그전까지는 초등학교 교실 뒷벽에 붙은 한국 전도를 보고 부대를 배치했다. 자연히 방어선이 면밀하게 연결될 수가 없었다. 방어선이 서로 30㎞나 떨어진 틈을 타고, 북한군 15사단(사단장 박성철)이 충북 괴산에서 갈령고개를 넘어서 상주로 쳐들어왔다. 상주를 넘으면 대구 함락도 불가피한 위기 순간이었다.

당시 북한군 15사단은 소백산맥 갈령고개를 타고 상주를 넘보고 있었다. 북한군 15사단장은 1970년대 남북적십자회담 북한 측 대표로도 왔던 박성철이었다. 북한군 15사단에는 45연대와 48연대가 배치되어 있었다. 48연대가 먼저 내려오는 것을 우리 주민들이 보고 경찰을 통해 군에 알렸다. 주민신고를 듣고 육군은 직할부대(17연대)를 급파했다.

17연대 정찰부대는 전령을 생포하여 북한군 15사단의 움직임을 소상히 알아내고 상주 이안천과 봉황산 등에 미리 매복시켜 대승을 거뒀다. 북한군 사살 356명에 우리 전사자는 불과 4명이었다. 주민과 군대의 절묘한 합작으로 대승을 거둬,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할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나라를 구하는 반전의 계기가 됐다. 연대원 전원 1계급 특진된 화령장 전투일이 소리소문없이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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