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편하게 듣는 클래식]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작품 64

지난해 8월 파리에서 런던으로 건너가 며칠 머물렀다. 런던은 매력적인 랜드마크를 지닌 도시다. 템스강의 스카이라인을 수놓은 빅 벤과 런던 아이, 그리고 웅장한 왕실 궁전과 사원들이 문득 보고 싶었다. 도착한 다음 날, 웨스트민스터 역에 내려 템스강에서 버킹엄 궁, 하이드 파크를 구경했다. 예상과 달리 시간이 많이 남아서 사치 갤러리로 이어지는 길로 접어들어 걷기 시작했다. 관광객이 거의 없는 주택가였다.

의외의 한적함을 느끼며 걷던 중 파랗고 둥근 현판이 걸린 집을 발견했다. 짤막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Mendel ssohn(1809~1847) stayed here."(멘델스존이 이곳에 머물렀다.) 멘델스존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에서 더 큰 사랑을 받았던 작곡가며, 빅토리아 여왕이 가장 아꼈던 음악가다. 그는 런던을 정기적으로 찾아 머무르며 수많은 곡을 썼다. 그런 그가 묵었던 집을 마주쳤던 것이다. 주소는 웨스트민스터의 4 Hobart place. 정처없는 여행자의 기쁨이 이런 것일까. 어설픈 관광객이 꺾어 들었던 낯선 골목이 200년 전 멘델스존이 오가던 거리로 순식간에 바뀌는 체험이었다. 우연히 발견한 집이었기에 더 특별했다. 며칠 전 집에서 무슨 음악을 들을까? 음반을 뒤적이다 멘델스존의 음반을 발견하면서 런던의 그 거리에서 푸른 현판을 마주했던 그 순간을 떠올렸다. 뜻밖의 선물 같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 Op. 64'를 들어본다.

19세기 낭만파 음악의 대표주자 멘델스존.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기품이 있으면서 따뜻하다. 듣는 이의 마음을 시원하게 쓸어주고 풍요롭게 채워준다. 그의 음악은 귀를 기울이기 전에 마음이 먼저 기울어진다. 정경화의 연주로 처음 멘델스존의 협주곡을 들은 후 다른 연주자들은 멘델스존을 어떻게 표현했는지 궁금해 그 후 여러 장의 음반을 사 모았었다. 하이페츠나 오이스트라흐, 나단 밀스타인을 즐겨 듣는다.

이 날은 모처럼 정경화의 연주를 다시 들었다. 정경화의 멘델스존은 격렬하지는 않지만 번뜩번뜩 날이 서 있어 낭만적이기보다는 차분하고 강하다. 여성 연주자의 유려함에 그녀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연주다. 기교를 과시하기보다 음악적인 면에 충실히 집중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하이페츠의 연주에서 느끼는 아찔함이나 추진력, 밀스타인의 부드럽고 흐르는 듯한 음색과는 다른 그녀만의 개성이 느껴진다.

빠르게 몰아치며 아름답고 완벽한 연주를 구사한 하이페츠, 그리고 그런 그와 완벽히 조화를 이루는 보스턴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한동안 빠져 있었는데, 어찌 보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여러 연주자의 곡을 들어보는 즐거움이 아주 큰 곡인 듯하다. 곡 자체의 멜로디와 에너지가 강해서 연주자를 압도하는 느낌의 곡들이 있다면,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연주되기 전까지는 완성을 기다리고 있는 넉넉한 빈 공간 같아서 연주자가 마음껏 뛰놀며 자기 색을 드러내야 비로소 완성되는 곡 같다. 들을수록 곡이 보여줄 수 있는 느낌의 스펙트럼에 놀라게 된다.

신동애(오디오 동호회 '하이파이클럽' 회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