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러시아 테마기행문] <2>모스크바, 잊지 못할 아우라들의 향연

모스크바 상징 붉은 광장 초입에 우뚝 서 있는 동화같은 성바실리 성당

모스크바의 상징인 붉은광장에 어둠이 내리면 크렘린궁
모스크바의 상징인 붉은광장에 어둠이 내리면 크렘린궁'레닌 묘와 광장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 굼 백화점은 루미나리에를 연상케 할 정도로 고운 옷으로 갈아입는다.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품고 있는 러시아 역사와 문화의 집합체인 크렘린궁. 푸틴 대통령 집무실도 함께 있어 관광객들은 사원광장 부분만 돌아볼 수 있다.
14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건축물을 품고 있는 러시아 역사와 문화의 집합체인 크렘린궁. 푸틴 대통령 집무실도 함께 있어 관광객들은 사원광장 부분만 돌아볼 수 있다.
성바실리 성당은 테트리스 게임의 배경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성바실리 성당은 테트리스 게임의 배경 그림으로도 유명하다.

1147년 모스크바 북동쪽 220㎞ 떨어진 수즈달의 공후(公侯) 유리 돌고루키가 '축축한, 젖소의 강'이란 어원을 가진 모스크바강 주변 한촌(寒村)에 주춧돌을 놓고 나무방벽을 쌓으면서 모스크바라는 이름이 역사서에 이름을 올리기 시작한다. 그 나무방벽이 크렘린의 전신이며, 대를 이은 공후들에 의해 도시의 면모를 갖추어가지만 1237년 몽골 서정군의 침략을 시작으로 1480년까지 몽골제국 예하 킵자크 칸국의 지배를 받게 된다.

'후회는 동정의 열매'라는 칭기즈칸의 냉혹한 주문으로 몽골군은 250년 가까이 러시아 전역을 무참하게 파괴하고 짓밟았다. 러시아인들은 그 굴욕을 그리스어 타르타로스(지옥)와 연관시켜 '타타르의 멍에'라 표현한다. 키예프 루시 시대인 988년 러시아는 정교를 정식국교로 받아들이고 로마교회와 달리 모든 활동을 민족 고유어로 진행한다. 여행하는 내내 수없이 둘러본 '성모 출현' '구세주' '신의 출현' 등의 이름을 가진 성당에는 좌석이 없고 벽면 이콘과 프레스코화의 성모는 더없이 슬픈 표정을 짓고 있다. 핍박당한 러시아 민중들이 기댄 몽골지배시대의 산물인 셈이다.

15세기,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형되긴 했지만 유럽과 아시아를 아우르겠다는 상징으로 쌍두 독수리를 국장(國章)으로 채택한 이반3세 이후 모스크바는 러시아의 수도이며 심장으로 불렸다. 18세기 로마노프 왕조의 표트르대제에 의해 잠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겼다가 1918년 혁명 이후부터 지금까지 러시아의 수도다. 세계공산당본부, 레닌 동상과 붉은광장의 레닌묘가 1991년 소련 붕괴 이전 소비에트 냉전시대를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처럼 증언하는 듯하다.

크렘린은 러시아어로 '요새' '성채' '성'을 의미하는 단어다. 공산혁명이 일어나 군주제가 폐지되면서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지도부가 자리하면서 소련 권력의 상징으로 군림했다. 현재에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며 러시아 정치와 권력, 문화 역사의 중심이다. 모스크바강을 따라 한 변이 700m의 삼각형 건물로 아홉 개의 궁전과 스무 개의 성문과 첨탑, 그리고 아르항겔스키, 우스펜스키, 블라고베쉔스키 대성당이 있다.

1586년 알 드레이 츄코프에 의해 건조되어 한 번도 발사된 적이 없다는 세계에서 가장 큰 청동대포, 무려 200t에 달하지만 화재로 한 번도 소리를 내어보지 못한 세계 최대의 종과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이반4세의 종루, 나폴레옹이 입성했다는 스파스카야 탑의 성문은 지금도 온 세계 사람들이 드나들고 있다. 햇빛인지 사원 금빛 지붕의 반짝임인지 눈앞이 온통 현란할 지경이다.

11세기 이후 러시아 미술작품의 정수 약 6만 점을 수장하고 있다는 트레치야코프 미술관은 1856년 트레치야코프가의 형제들이 수집한 작품들로 시작되어 지금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서울의 리움미술관이 문득 떠올랐다. 그렇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이런 것이지. 도판으로만 보며 찬탄해 마지않던 일레야 레핀을 비롯한 안드레이 루블료프, 슬리코프, 페로프의 수많은 원화들을 뛰다시피 걸으며 관람했다. 서구의 몇몇 나라와 달리 수탈이나 노획품이 아닌 정식 구입품으로만 채워졌다는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미술관의 진면목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러시아 체류 5일째 만에 처음으로 러시아 국민들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번 모스크바에서 최대의 행운은 푸시킨 미술관에 있었다. 뙤약볕에 '나래비'를 선 모스크바 시민들과 함께 루벤스, 렘브란트 등의 작품으로 구성된 르네상스 특별전을 관람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방에서 올라온 러시아인들이 빠지지 않고 찾아본다는 러시아 민속공연장을 찾아가는 길에 타 본 모스크바 지하철. 935년 개통되었다는 모스크바 지하철역은 지하 요새를 방불케 했다. 80m 길이의 '초고속' 에스컬레이터와 커터날처럼 거칠게 닫히는 지하철 문은 피로감을 확 달아나게 할 정도였다.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 며칠 전 모스크바 지하철에서는 초대형 참사가 일어나 수십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는 뉴스를 들었다. 가슴을 쓸어내렸다.

또 모스크바의 교통 정체는 최악이었다. 5분 거리를 1시간에 빠져나오기는 예사, 경찰관이 오기 전까지 접촉사고가 난 차를 치우지 않는 갓길도 없는 일직선 도로는 사람들 애간장을 다 녹였다. 하루에 그렇게 많은 차 사고를 본 건 일행 모두 처음일 지경이었다.

그럼에도 모스크바공국이 잉태된 수즈달의 풍경은 누군가의 말 그대로 '이발소 그림'이었다. 지금도 오래된 우스펜스키 성당의 푸른 지붕과 금빛 별, 작은 박물관, 나무다리가 놓인 작은 강이 눈에 선하다.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옮겨가기 전 급히 들른 크렘린 동쪽 붉은광장의 굼 백화점 외벽이 루미나리에처럼 밝혀지자, 동그란 양파 모양의 지붕과 다채색 비잔틴 건축양식의 성바실리 사원이 마치 동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나타난다. 너무나 아름다운 사원을 이곳에만 두고 싶어 설계자인 이탈리아의 건축가의 두 눈을 뽑아버렸다는 무시무시한 이반4세의 전설도 어느 정도 수긍이 갈 정도였다.

시간이 다 되었다는 안내자의 재촉에 급히 올라탄 버스를 타고 상트페테르부르크행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기 위해 역으로 가면서 글린카, 알렉산드로 보로딘, 무소르그스키, 차이콥스키, 림스키코르사코프, 샤리야핀, 소비노프 등의 아우라 가득한 이름들을 떠올린다. 마침 이름만 들어도 백조의 호수가 연상되는 볼쇼이극장의 정문을 지난다.

어둠이 깔린 모스크바에 비가 흩뿌린다. 모스크바여, 너를 내 가슴에 넣고 떠나니 눈물을 흘리지 마시라.

박미영(시인, 작가콜로퀴엄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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