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에세이 산책] 12척의 배

올여름 최고의 영화는 '명량'이 아닌가 한다. 날씨는 덥고 어느 것 하나 신통한 것 없는 판국에 젊은 감독 김한민이'짜잔 -'하며 이순신 장군을 모셔온 것이다. 당시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임금은 비겁했고 조정은 혼탁했다. 오랜 전쟁으로 민심은 흉흉하여 병사들은 도망가거나 전의를 상실했다.

선조가 얼마나 한심한 인물이었는지는 역사가 증명한다. 물을 모르는 임금은 바다 건너 일본을 다녀온 사신으로부터 전쟁의 위협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엉뚱한 의문이 생겼다. "그래, 바다는 어떻게 생겼던고?" "많고 많은 물이 끝없이 이어지더이다."

"고이타. 어찌하여 물이 그리도 많더란 말인고!"

임금은 전쟁 내내 물을 아는 이순신을 옥에 가두었다 풀었다 했다. 적장인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속아 장군을 파면하는가 하면 재임명했을 때는 수군으로 싸우지 말고 육군으로 싸우라고 명했다. 이때 장군이 임금에게 올린 상소가'신(臣)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습니다'(尙有十二隻)이다.

영화는 철저히 명량해전을 파헤쳤다. 과감하게도 카메라를 1시간 이상 바다에 들이댔다. 뛰어난 지략을 지닌 왜군 수장 구루지마가 330척의 배를 이끌고 명량에 뛰어들자 이순신은'죽기로 싸우면 반드시 살고, 살려고 비겁하면 반드시 죽는다'(必死卽生 必生卽死)며 장수들을 독려했다.

12척의 조선군과 330척의 왜군. 이순신은 바다를 계산했다. 명량이 수로가 협소하고 조류가 빠른 점을 이용해 울돌목에 쇠줄을 설치하고 일자진을 펴서 왜군을 유인했다. 급물살과 쇠줄에 왜군이 걸려들자 사정없이 함포 공격을 퍼붓는 이순신. 조선군은 명량해전에서 세계 해전사에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완벽한 승리를 거두었다.

저녁 뉴스에서는 아직도 실마리가 잡히지 않는 진도의 세월호 사건을 보도하고 있었다. 진도는 명량에서 멀지 않은 바다이다. 그 바다에서 해전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수백의 학생들이 죽거나 실종해버린 것이다.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20년 전과 똑같이 무능한 지도부와 썩은 관료들만 떠들어대고 있을 따름이었다. TV를 끄니 시대에 굴하지 않고 온몸으로 나라를 사랑했던 이순신 장군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진정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우리에게도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 있느냐고!

소진/에세이 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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