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오지 기행 아시아를 가다] 고산족 순례-몽족의 무속(1)

아궁이'기둥 등 집안 구석구석 향불…박수무당 꽹과리 치며 정화의식

때에 전 커다란 수건을 두어 바퀴 돌려 머리에 쓰기를 좋아하는 깔리양 아낙들이 망태를 메고 손에는 긴 칼을 들고 들판으로 나간다. 먼 옛날 우리의 풍경 속에 어머니들도 논밭을 맬 때 햇볕을 피하기 위해 하얀 수건을 쓰기 좋아했지 않은가. 거기다가 하얀 옷까지 즐겨 입어 이국 사람들은 이런 우리를 가리켜 동쪽 나라에 사는 백의민족이라고 불렀다는데.

몽족 마을 삼거리가 아침부터 붐빈다. 며칠이나 입었을까, 역시 잔뜩 때에 전 옷을 입은 찡쯩리의 형이 한 손에 낫을 들고 어깨에는 체크무늬가 선명한 깔리양족 전통 천가방을 메고 집을 나선다. 그 안에는 먼 옛날 내 책가방 속에서 달그닥거리던 노란 도시락처럼, 점심때 먹을 밥 한 덩어리가 비닐봉지에 싸여 뒹굴고 있다, 삼거리를 막 돌아서던 그가 반찬이라도 살 요량인지 돌아서더니 가게에서 튀긴 생선 세 마리를 산다.

이른 시간부터 몽족 마을 삼거리는 깔리양과 몽족 아낙들로 부산하다. 살라(정자) 옆에는 인근 도시에서 들어온 옷장사의 난장이 펼쳐져 있고 벌써 따가운 햇살이 내리쬐는 얇은 포장 아래에도 옷을 고르는 소녀들과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자손이 넘치는 집들

오늘 굿을 하는 집으로 가니 아직 9시도 안 되었는데 벌써 가족들로 웅성거린다. 대부분 한 집 건너 부모'형제와 친척들이 살고 있고 게다가 아이들까지 많이 낳으니, 어느 집이나 사람들로 붐빈다. 거기다 우리에게는 화석이 된 조혼, 일부다체제의 유물까지 살아 있으니 더 말하여 무얼 하랴. 근친끼리 혼인을 많이 하는데도 특별하게 이상 징후는 없는 듯하다. 그러니 이 오지 산마을에도 어디를 가나 아이들 소리 왁자하고, 고샅길은 한없이 활기차다.

이 집 역시 부인이 둘이다. 첫째 부인은 자식이 4명이며 둘째 부인은 아들만 둘이다. 인근 도시 치앙마이에 살다 왔는데 이곳에 잘 적응하는 것 같다. 큰아들 스낭은 치앙다오에서 야채 도매상을 하며 특히나 깔람삐(양배추)를 많이 취급하는데 장사가 잘된다고 한다. 둘째도 역시 그 인근에서 딸기를 키운다. 큰아들은 도시 생활이 힘들어서인지 아니면 엄마가 보고 싶어선지, 자식까지 다 낳아 살고 있으면서도 자주 온다. 평소에 건장하고 술 잘 먹는 그의 호탕함과 어쩐지 어울리지 않은 느낌이 든다.

바람이 불 때마다 건너편에 있는 비닐하우스가 너덜너덜 날린다. 물뿌리개를 들고 들어가는 찡쯩리를 따라 들어가 보니 '바까 카오'라는 농작물 모종이 막 작설(雀舌)처럼 자라고 있다.

◆굿의 풍경

부엌 앞에는 오늘 제물로 쓰일 작은 돼지 한 마리가 네 발이 묶인 채 놓여 있고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똥을 지리고 있다. 푸대 안에도 닭 몇 마리가 묶인 채 잠깐씩 푸드덕거린다. 보통 청소들은 안 하는지 어느 집이나 지저분하다. 그 옆에 몽족 전통 복장을 한 '아잔'이 부인과 함께 앉아 있다. 여기서는 스님이나 목사, 선생, 제관 등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전부 아잔이라고 부른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벽에는 소박한 제단이 하나 걸려 있고, 간단한 제기 몇 개와 오늘 만든 부적들이 양쪽에 붙어 있다. 그 아래에는 플라스틱 상자 두 개가 놓여 있고, 물그릇 속에 동전 2개, 잔돈이 놓여 있는 꽃 한 접시, 쌀 그릇 위에 계란, 향을 꽂은 그릇 2개, 술잔, 불을 밝힌 초 3개, 하얀 부적 위에 강냉이와 칼 앞부분 모양을 닮은 갈색 나무 4개가 놓여 있다. 그 앞에는 오늘 박수가 쓸 긴 칼이 섬뜩하게 땅바닥에 꽂혀 있는데, 문득 높다란 제단 위에서 작두를 타던 우리 산천의 박수무당 모습과 오버랩된다. 한쪽 다리가 묶인 닭 한 마리가 눈알을 뒤룩거리며 사람이 올 때마다 불안한 울음소리를 내며 귀퉁이 쪽으로 도망간다. 닭이나 개들은 귀신을 본다고 하더니 그래서 갖다 놓은 것일까. 집주인이 향에 불을 붙이더니 집 안 여기저기에 그 연기를 쫴준다. 매일 밥을 짓는 장작불 재 속에, 흙으로 만든 이동식 아궁이 틀에, 부엌문 앞, 기둥 밑 등 집 안 구석구석을 돌며 골고루 향을 피운다.

◆박수무당의 연희

이제 굿이 시작되는 듯하다. 빤 웅 마을에서 온 박수무당 '몽 아잔'에게 가족들이 먼저 부엌 땅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린다. 이 작은 산간 마을에도 불교와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이 반반쯤 섞여 있는 듯하며 제례의식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 듯하다. 아잔의 옆에는 마을의 한 사람이 붙어 수시로 향불을 갖다 놓거나 하면서 시중을 든다. 대나무 뭉치에 불을 붙여 아잔이 앞서면 뒤에서 가족이 일렬로 서서 뒤따른다. 맨 앞 세 사람이 꽹과리를 치면 그다음 십대 소년이 함지박 속에 옥수수를 잔뜩 담아 허공에 뿌리고, 이어 다른 소년이 향과 물그릇을 들고 한 모금씩 허공에 내뿜으며 뒤따른다. 아잔은 앞에 주머니를 차고 있는데 그 안에는 하얀 가루가 잔뜩 들어 있고 그것을 불 위에 뿌리니 마치 휘발유처럼 순식간에 불꽃이 확 일어난다. 그때마다 가족들의 꽹과리 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영문을 모르고 옆에 서 있던 이방인은 순식간에 눈썹까지 다 탈 뻔했다. 그렇게 난장에 가깝게 부엌을 서너 바퀴 돌더니 이내 문 앞을 마지막으로 정화하고 밖으로 불을 버린다. 사람들의 머리와 옷, 카메라 위까지 흰 가루가 자욱하다. 한국에서도 부정한 기운을 없애고 굿을 시작하는데 이곳의 정화 의식이 우리와 유사한 점이 많은 듯하다.

윤재훈(오지여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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