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민송기의 우리말 이야기] 안민가

삼국유사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 조에 보면 즉위한 지 24년이 된 경덕왕은 신하들에게 영복승(榮服僧)을 데려달라고 부탁한다. 신하들은 영복승을 옷 잘 입는 스님으로 알아듣고 잘 차려입은 스님을 데려왔지만 왕은 거부하고 대신 남루한 복장을 하고 대나무 통을 메고 가는 스님을 맞이한다. 왕은 그 스님이'찬기파랑가'를 지은 충담사라는 것을 알고 백성을 편안하게 해 줄 노래를 지어달라고 하는데, 이에 응답하여 충담사가 지은 노래가 '안민가'이다.

안민가의 해석은 번역자들마다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임금은 아버지처럼, 신하는 어머니처럼 어린 아이와 같은 불쌍한 백성들을 위한다면 백성들이 그 사랑을 알 것이다. 백성들이 잘 먹고 살면서 백성들의 입에서 이 땅을 버리고 어디를 가겠냐는 말이 나오면 나라가 보전될 것이다. 임금은 임금답게, 신하는 신하답게, 백성은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가 태평해질 것이다."

경덕왕이 이 노래를 만들도록 한 이유는 왕의 권위가 약해지고 정치적으로 안정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대한 답으로 충담사는 결국 순리를 따르라는 가장 기본적이고 원론적인 이야기를 한다. 안민가를 요약하면 결국 '임금과 신하가 한마음으로 백성을 위하라.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의 정치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정치인들에게 기본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경덕왕은 충담사의 말을 실천하기보다는 자신의 후계 문제에 더 관심이 많았다. 삼국유사의 기록을 보면 경덕왕은 음경이 8치(약 20㎝)였는데 후사가 없었다고 한다.(누가 그걸 재서 역사에 기록했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그래서 왕비를 폐위하고 만월부인을 맞이한다. 그러고는 표훈대사를 불러 하느님께 부탁해 아들을 점지해달라고 한다. 그러나 하느님은 딸을 아들로 바꿀 수는 있지만 그렇게 하면 나라가 혼란해진다고 이야기를 한다. 그럼에도 경덕왕은 하늘의 순리를 어기고 아들로 바꾸어 달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왕위를 이은 사람이 혜공왕인데, 혜공왕은 몸은 남자였지만 여자인,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트랜스젠더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이로 인해 왕의 권위가 약해진 틈을 타 각간들이 내전을 하면서 신라는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지금 온 나라가 뒤숭숭하고 국민들의 입에서 "대한민국을 떠나든지 해야지"라는 말들이 많이 나오는 것은 분명히 좋지 않은 것이다. 이럴 때 정치인들은 상황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 하거나 국민들을 힘으로 눌러 권력을 유지할 생각에 몰두하게 된다. 천 년도 훨씬 전에 충담사는 바로 이런 것을 통찰하고, 이럴 때 정치인들이 생각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안민가에 담았던 것이다.

능인고 교사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