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안전한 도로 행복한 교통문화] 음주운전

알코올농도 0.1% 가상 운전, 10분 도안 정지선·신호위반 8회나

지난달 15일 도로교통공단에서 기자가 운전 시뮬레이션 장비를 이용해 음주운전 혈중 알코올 농도 0.1%(면허 취소)를 가정한 운전 실험을 하고 있다. 돌발 상황 직후 핸들을 마음대로 조작하지 못해 사고를 내고 말았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지난달 15일 도로교통공단에서 기자가 운전 시뮬레이션 장비를 이용해 음주운전 혈중 알코올 농도 0.1%(면허 취소)를 가정한 운전 실험을 하고 있다. 돌발 상황 직후 핸들을 마음대로 조작하지 못해 사고를 내고 말았다. 성일권 기자 sungig@msnet.co.kr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대구에서만 한 해 2천 명이 넘는다. 사고가 났을 때의 후회는 늦다. 그런데도 여전히 술을 마신 채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술을 마신 채 운전을 하면 신체에 어떤 변화가 올까. 그 변화는 또 얼마나 위험할까? 기자가 지난달 15일 도로교통공단의 협조를 받아 교육용 가상주행 시뮬레이터를 이용한 음주운전 실험을 했다.

◆신체'인지 능력 더뎌

실제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혈중 알코올농도 0.1%(면허 취소) 수준임을 가정했다. 실험은 10㎞의 도로에서 약 10분 동안 진행됐다.

운전석은 경차 운전석을 그대로 옮겨놨다. 운전석을 조절하니 앉는 게 한결 수월해졌다. 눈앞의 대형 화면에 어두컴컴한 밤길 도로가 펼쳐졌다. 그런데 화면이 흐릿했고 앞은 평소와 달리 좁아 보였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앞유리 가운데를 중심으로 60% 정도는 선명했고, 가장자리로 갈수록 흐릿했다. 이선주 도로교통공단 대구지부 교수는 "이는 음주자의 평균 반응률을 반영한 것으로 알코올 수치가 높아질수록 시뮬레이터에 반영되는 반응속도가 늦어지고, 시야각도 좁아 보이도록 설정됐다"며 "실제로 술을 마시면 눈의 초점을 잘 맞추지 못해 신경 써서 보는 부분은 선명하지만, 그 이외 영역은 음주량에 따라 흐리게 보이거나 인지하기 어려워진다"고 했다.

시동을 걸고 가속 페달을 살짝 밟았다. 차는 생각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 기자가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살짝 틀면 0.25초 후에, 브레이크를 밟으면 약 0.35초 후에 반응했다. 그러던 중 어린이보호구역이 나타났다. 그러나 화면 가장자리가 흐릿해진 탓에 이를 알리는 간판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가서 바닥에 표시된 제한속도를 보고서야 속도를 줄였다.

얼마 후 다다른 교차로.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는 틈에 브레이크를 밟았지만 차는 정지선을 훨씬 지나 교차로 한복판에 멈췄다. 다리의 반응이 느려진 탓이었다. 만약 다른 방향의 차들이 움직였다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뻔한 상황이었다.

'ㅓ'자형 교차로를 직진해 지나는 데 갑자기 오토바이 한 대가 좌측에서 진행 방향으로 들어왔다. 급히 운전대를 오른쪽으로 돌려 피하며 브레이크를 밟았다. 가까스로 오토바이는 피했지만 차는 균형을 잃은 채 도로 가장자리의 경계석을 타고 넘었다.

다시 이어진 주행. 정신을 바짝 차렸으나 차는 정지선과 황색 신호등을 몇 차례나 무시한 채 갈지(之)자로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5분 동안 10여 곳의 교차로를 이렇게 지났다.

◆돌발 상황 대처 되지 않아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횡단보도를 지날 즈음, 갑자기 한 아이가 뛰어들었다. 그 아이는 횡단보도를 평소대로 건너고 있었으나, 운전자인 기자의 눈엔 불쑥 뛰어든 것처럼 보인 것이다. 놀란 기자는 급히 운전대를 틀어 차 방향을 돌렸다. 다행히 아이는 피했으나 차는 비틀대다 건너편에서 달려오던 트럭과 충돌하고 말았다. 이 모두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렇게 10분이 지났다. 운전석을 빠져나올 때 기자의 다리는 후들거렸고, 조금 전 상황이 실제 상황처럼 가슴을 쿵쾅거리게 했다.

▷무단횡단 ▷어린이와 오토바이 ▷자전거 탄 사람 ▷도로 위에 앉은 취객 ▷마주 오는 구급차 등 다양한 돌발 상황을 치러내고서 받은 시험 평가서는 어땠을까. 신호 위반 5회, 정지선 위반 3회, 속도위반 8회로 법규를 여러 번 어겼다.

급가속과 급감속도 각각 51, 59차례나 했다. 반응 시간은 평균 3.75초나 늦었다. 차로 내 좌우 위치 편차도 제멋대로였다. 대체로 차로 중심을 달렸지만, 급히 핸들을 꺾은 구간에서는 차량이 수차례 좌우로 움직였다.

이선주 교수는 "술을 마셨을 때 사람에 따라 뇌기능 저하는 다르게 나타난다. 시력이 떨어지기도 하고, 청력이 감퇴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각성(또는 수면) 제어 능력이 낮아지기도 하는 등 저마다 특색을 지닌다"며 "하지만 술이 전체 뇌기능을 떨어뜨리고, 그 상태서 운전하면 돌발 상황에 반응 자체를 하지 못할 수 있어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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