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시간의 짧은 만남이었지만 참 좋았다. 미소가 좋았고, 낮은 데로 임하심이 좋았고, 무격식이 좋았고, 젊은이들에게 전하는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가 좋았다. 또 자신을 내세우지 않음이 좋았고 남의 말을 듣고 소통하려는 모습도 좋았다. 말과 미소 그리고 세상을 향해 내민 손짓으로 인해 그동안 가슴을 짓누르는 것 같던 일상의 답답함은 며칠만이라도 잊고 지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오늘 4박 5일간의 일정을 마치고 떠났다. 그가 안겨준 선물은 측량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남겨준 숙제도 산더미 같다. 때로는 우리들에게 가슴 떨리는 감동을 안겨 주었고 때로는 낯이 붉어지고 고개가 숙여지도록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었고 때로는 가슴이 뜨끔할 정도의 비수 같은 훈계도 잊지 않았다.
그가 머문 시간 동안 우리는 환호하고 열광했다. 그 100시간의 무게감은 남달랐다. 즉위 때부터 전례를 무시한 파격으로 한없이 낮은 데로 임하는 모습을 보여줬던 교황에 대한 기다림은 방한 이전부터 충만했다. 교황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14일 청와대 공식환영식 연설에서 교황은 이 사회를 향해 첫 메시지를 던졌다. "열린 마음으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가난한 이의 벗'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여진 것이 아니었다. 이어 저녁에 한국주교단을 만난 자리에서는 "교회가 아주 잘 나갈 때 가난한 사람들을 잃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어 희망의 지킴이가 되어야 한다"며 교회의 세속화를 경계하는 당부와 충고도 잊지 않았다.
15일 대전서 열린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에서 그는 "물질주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바란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빈다.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빈다"는 등 물질 숭상, 무한 경쟁, 생명 경시 등이 만연한 한국사회를 향해 세 가지의 강력한 메시지를 던졌다.
이어 15일 오후 아시아청년대회 참가자들을 만나서는 "빈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물질과 권력, 쾌락 숭배의 징후들을 본다. 이러한 세상에 하느님의 자리는 더 이상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정신적인 사막이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가고 있는 것 같다"고 장탄식을 하면서 청년들의 각성과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독려했다. 16일 시복식에서도 교황은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 안에 살고 있다"며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촉구했다. 17일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는 표현이 더 직설적이었다. "도움을 간청하는 사람들을 밀쳐내지 마라. 도움을 바라는 모든 이들의 간청에 연민과 자비와 사랑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죄와 유혹, 그러한 압력을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며 성경 시편 구절을 인용해 "잠들어 있는 사람은 아무도 기뻐하거나, 춤추거나, 환호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이 더 강한 파괴력과 전파력을 갖는 이유는 행동과 실천이 함께하기 때문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더 울 필요가 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았다." 이 말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아르헨티나 추기경으로 있던 2004년 연말 9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나이트클럽 화재 대참사 5주기 미사에서 했던 말이다. 사고 발생 4년 뒤에야 겨우 14명에게만 유죄판결이 내려진 데 대한 강한 비판을 담은 메시지였다. 반성하지 않고 사고와 희생자들을 잊어버리고 마는 사회에 대한 경종이기도 했다. 교황이 방한 기간 내내 보여준 세월호 유가족들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배려가 그냥 나온 것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먼저 달려가 손을 잡아준 교황이니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자신을 한없이 낮춤으로써 더없이 높아짐을 보여준 프란치스코 교황. 그가 우리 곁에 있을 때의 행복감이 얼마나 갈지. 그가 머물렀던 자리가 너무 커 보인다.
비바 파파(교황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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