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동에서] 도시의 비전

최근 업무차 미국 시카고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10년 전쯤 스치듯 들렀던 이 도시를 이번에는 사흘간이나마 둘러보는 행운을 가진 것이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미국의 저력을 실감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었다.

시카고는 미국 일리노이주 중부에 있는 대도시다. 바람이 많이 분다고 해서 '윈디 시티'(Windy City)라는 별명이 있고, 한겨울에는 영하 30℃까지 기온이 내려간다고 하니 이래저래 살기에 반가운 환경은 아니다. 알 카포네 같은 '마피아의 도시'로 유명하고, 일리노이주 상원의원을 지낸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시카고는 '가장 미국적인 도시'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미시간 호수라는 천혜의 자원을 끼고 교역업이 융성하던 시카고는 100여 년 만에 제철을 비롯한 중화학공업 비중이 높아지면서 20세기 최고의 중공업 도시로 도약했다. 그러나 철강 경기가 침체하면서 실업자가 길거리로 쏟아지는 비운을 맛보기도 했다.

그런 시카고가 현재는 전 세계 관광객들과 금융이 몰리는 도시로 변모했다. 시카고 시내를 방문한 사람은 누구나 그 압도적인 크기의 빌딩 숲에 시선을 사로잡힌다. 빌딩 하면 삭막하고 인공적인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시카고의 빌딩들은 각양각색의 개성을 뽐내며 그 자체로 훌륭한 작품이다. 오래된 건물과 현대식 건물들이 그림 같은 조화를 자랑한다.

그런데 시카고에선 최근 한 민간투자회사 주도로 '사우스사이드 레이크프론트'(Southside Lakefront)라는 이름의 대규모 개발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한국으로 치자면 인천 송도 개발 사업과 비슷할 법한데, 미시간 호수를 마주한 옛 공장 지대를 주거와 상업, 생태가 어우러진 신도심으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그 회사 관계자의 안내로 둘러본 현장은 사람 키만 한 잡풀이 무성하고, 이제는 과거의 유물이 돼버린 철강회사의 버려진 건물터만 남아 황량했다. 회사 관계자는 "20년 후 이곳은 시카고를 상징하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들이 영상으로 보여준 7, 8분 길이의 사업 계획은 시카고의 영욕과 비전을 웅변하고 있었다. 오바마 퇴임 후를 겨냥한 오바마 도서관을 미시간 호수 앞에 짓겠다는 대목에선 낯선 이방인의 가슴도 두근거렸다. 이런 게 미국의 저력이구나 싶었다.

이즈음에서 대구의 미래를 떠올려본다. 한때 시카고와 같은 산업도시의 기수로, 국내 제3위를 자부한 도시. 자랑스러운 역사와 전통문화를 간직한 도시. 하지만, 지금은 여타 도시들에 추월당하면서 청년이 떠난다는 오명을 안은 도시.

이제 막 민선 6기가 출범한 대구는 전환기의 리더십을 절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창조도시라는 새 비전도 내걸었다. 한국경영학회장인 이장우 경북대 교수는 기존 방식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속도가 제어되지 않는 현재 같은 전환기에 창조적 패러다임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창조적 패러다임의 핵심은 물질이 아니라 정신이며, 역사적으로 끈기와 패기의 기질을 가진 대구가 창조 인재의 요람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20년 후 드넓은 호수 앞에 펼쳐질 타국의 신도시를 떠올리며, 대구에서도 그와 같은 원대한 꿈이 지금부터라도 잉태되기를 바라본다. 도전의 시대에 가장 큰 적은 '자기비하'라는 사실을 상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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