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갈수록 뻔뻔해지는 국회

불과 2년여 전이다. 2012년 5월 말 출범한 제19대 국회에 거는 국민들의 기대는 컸다. 여'야가 경쟁적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던 국회의원의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안을 내놓으며 임기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해 6월 초 충남 천안시 지식경제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새누리당 의원들의 첫 연찬회. 의원들은 제19대 국회에서 실천하겠다며 6대 쇄신안을 내놓았다.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것이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였다. 이는 원래 국회의원에게 신체의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행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국회기능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국회가 임시회를 열어놓고 비리 의원들을 보호하는 소위 '방탄 국회'의 구실로 이용돼 왔다. 의원들이 이를 가장 먼저 올린 것은 스스로 그 적폐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의원연금제도 폐지를, 세 번째론 국회의원 겸직의 원칙적 금지 등을 제시했다.

안만 내놓은 것이 아니다. 결의문까지 채택하는 의지도 보였다. 당시 결의 내용을 그대로 옮겨 보자. "하나, 우리는 지난 국회의원 선거 공약 설천을 위해 19대 국회 출범 100일 안에 관련 법안들을 모두 발의하고 수시로 공약실천 현황을 국민들께 공개한다.", "하나, 6대 쇄신안의 정신과 기본 원칙을 존중하여 국회를 반드시 쇄신한다.", "하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사회안전망 구축을 강화하며 우리 사회의 갈등을 해결하고 화합하는데 앞장선다."

과거 누렸던 그리고 비판받았던 모든 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선언에 국민들은 박수를 보냈다.

이슈를 선점당한 야당은 '정치 쇼'라고 폄훼했다. 그러자 김기현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우리가 국회 쇄신 이슈를 선점해 국민의 사랑을 받게 되지 않을까 두렵기 때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은 한번 약속하면 반드시 지키는 신뢰의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국회의원들이 특권을 다 내려놓겠다며 결의문까지 내놓는 마당에 이를 마다할 국민이 어디 있을까.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 역시 국회 쇄신이라는 국민적 요구를 거스를 수 없었다. 면책 특권과 불체포특권의 남용을 방지하고, 국회의원이 변호사 교수 등을 겸직할 수 없도록 국회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적 공분을 샀던 국회의원 연금제도는 전면 폐지하겠다고 했다. 한 술 더 떠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소환제까지 입법하겠다고 공언했다.

세월이 흘렀다. 제19대 국회도 어느덧 임기의 절반을 넘겼다. 그때 그 말을 믿었던 국민들이 어리석었다. 그때 그 선언들은 그저 '정치쇼'였음이 분명해졌다.

검찰이 7월 임시국회의 마지막 날인 19일 밤 9시 30분쯤 입법 비리 혐의로 신계륜 김재윤 신학용 의원의 구속영장을 전격 청구하자 야당은 불과 두 시간여 만에 임시국회 소집 요구서를 제출해 맞불을 놨다. 국회는 날짜가 바뀌기 1분 전인 11시 59분에 임시국회 소집을 공고했다. 국회법은 임시국회의 경우 3일 전 공고를 규정하고 있다. 20일을 1분 앞두고 공고를 했으니 19일 공고한 것이 된다. 임시국회는 22일부터 열리게 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세월호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은 웬만한 국민은 다 안다. 누가 봐도 방탄 국회요, 꼼수 국회다. 여당 역시 조현룡 박상은 의원이 각각 철도와 해운 관련 수뢰혐의로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방탄 국회와 불체포특권은 여전히 의원 모두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다.

이 모두는 국회의원들이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쇄신안을 지키지 않은 데서 비롯된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우리 당은 방탄 국회를 열지 않겠다"고 하는 말은 그래서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여'야가 19대 국회 개원 당시 국민들에게 공언했던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지켰더라면 '방탄 국회를 열지 않겠다'는 말이 나올 이유가 없다.

우리 국회는 19대 들어 오히려 더 무책임하고 뻔뻔해졌다. 민생법안 처리는 뒷전이고 비리의원 감싸기에는 적극적이다. 국민들은 비리 의원을 감싸기 위해 서둘러 여는 방탄 국회가 아니라 국가를 투명하게 할 김영란법 같은 민생법안 처리를 위해 잽싸게 국회를 소집하는 그런 모습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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