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얼마나 가고 싶은 학교였던가, 연필로 눌러 쓴'백발의 동심'

성인 초·중과정 대구내일학교 졸업전

배고프고 힘든 시절 배움의 시기를 놓친 60대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 늦깎이 학생들이 내일학교 졸업을 앞두고 3일부터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 대구메트로센터에서
배고프고 힘든 시절 배움의 시기를 놓친 60대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 늦깎이 학생들이 내일학교 졸업을 앞두고 3일부터 대구도시철도 반월당역 대구메트로센터에서 '나도 시인이다'시화전을 열고 있는 가운데 전시된 작품들이 진솔하고 애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msnet.co.kr

'칠십 평생 간절하던 학교생활/ 책가방 속엔 교과서가 가득하다/ 꿈만 같다 내 인생에 학교라니/ 매일매일 꿈만 같다/ 내가 짊어진 책가방이 어릴 적/ 내 동생 포대기가 아닌지/ 오늘도 뒤돌아본다.'(김호순 씨의 '다시 찾은 나의 삶')

늦깎이 학생들의 작품을 모은 시화전이 열려 눈길을 끌고 있다.

대구시교육청은 3일부터 대구도시철도 2호선 반월당역 지하 메트로센터 광장에서 시화전 '나도 시인이다'를 열고 있다. 이 행사가 주목을 받는 것은 대구내일학교 졸업생들의 작품을 모은 졸업 시화전이어서다. 내일학교는 성인을 대상으로 초'중학교 과정을 가르치고 학력을 인정해주는 프로그램. 초등 과정은 명덕초교, 달성초교, 성서초교, 금포초교 등 4곳, 중학 과정은 제일중학교에서 운영되고 있다. 학생 대부분은 60대 이상 할아버지, 할머니들이다.

이달 하순 내일학교 졸업장을 받는 이들은 초등 과정 125명, 중학 과정 25명 등 모두 150명. 이 가운데 143명이 시화전에 작품을 내놨다. 이들은 손으로 또박또박 시를 적어 넣고 색연필로 알록달록하게 시의 배경을 그렸다. 삐뚤삐뚤한 글씨는 내용 못지않게 정겨움을 안겨줬고, 잘 그렸다곤 할 수 없어도 정성이 듬뿍 담긴 그림은 시를 한층 돋보이게 했다.

김호순(74'수성구 매호동) 씨는 배움의 한을 풀려고 지난해 9월 명덕초교에 개설된 내일학교에 입학했다. 이달 23일 졸업하는 김 씨는 제일중학교에 진학, 배움의 길을 계속 걸을 작정이다. 그의 시에는 한평생 간절했던 학교생활이 얼마나 좋았는지 잘 녹아 있다. "내가 어릴 적만 해도 딸들은 제대로 공부를 안 시키는 경우가 많았어요. 농촌에 일이 여간 많은 게 아니잖아요. 농사를 돕고 동생도 돌봐야 해 초교 1학년 때 학교를 그만뒀죠. 건강이 따라주는 한 계속 학교에 다니고 싶습니다."

김 씨와 동기인 태옥춘(63'수성구 지산동) 씨는 '떡집 남편'이라는 제목의 시를 썼다. 자신이 뒤늦게 시작한 공부에 시간을 빼앗기는 바람에 떡집을 함께 운영하는 남편이 힘들게 돼 미안한 마음을 표현했다.

"예전만큼 떡집 일을 챙기지 못해 가족들에게 살짝 미안하기도 하지만, 배우는 게 너무 즐거워 그만둘 수 없었습니다. 일과 공부를 병행하느라 피곤해 버스를 타고 등교하면서 잠시 눈을 붙이곤 했죠. 그래도 학교 가는 게 좋았어요. 저를 이해해준 남편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시교육청은 14일까지 시화전을 연다. 우동기 대구시교육감은 "앞으로도 배움의 기회를 놓친 늦깎이 학생들이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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