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염(裴炎)은 중국의 유일한 여성 황제였던 당나라 측천무후의 측근으로 재상인 중서령에까지 올랐던 인물이다. 측천무후의 남편인 고종의 고명대신(황제나 왕의 임종 때 임금의 유언을 받드는 신하)이었고, 이어 황제 자리에 오른 중종을 50여 일 만에 폐위한다는 측천무후의 명령서를 읽은 것도 배염이었다. 정치가로서 알려진 그의 모습은 이 정도지만, 당시의 문필가 장작의 조야첨재(朝野僉載)에는 아내가 변해 가는 모습을 걱정스럽게 표현한 그의 글이 전한다.
이에 따르면 젊을 때는 생보살(生菩薩)처럼 매우 예뻐 걱정이고, 중년 때는 구자모(九子母), 늙어서는 구반도(鳩盤茶, 茶는 소녀라는 뜻으로 도로 읽는다)라 했다. 구자모는 자신의 아이를 위하는 일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불교신화의 여신으로 아이를 아홉 둔 어머니처럼 아이를 키우느라 전혀 꾸미지 않아 추하게 보이는 것을 걱정한 표현이다. 구반도는 지극히 못생긴 악귀로 배염은 벗겨진 화장 뒤에 드러나는 늙은 아내의 검푸른 얼굴이 두렵다고 했다. 예나 지금이나 아내의 변하는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은 셈이다.
아무리 걱정하는 마음이라 하더라도 요즘 시대에 이렇게 표현했다가는 밥도 못 얻어먹고 쫓겨나기 딱 알맞다. 그런데 늙은 남편에 대한 아내의 내심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모양이다. KDB대우증권 미래설계연구소가 50세 이상 남녀 고객 98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은퇴한 뒤 행복한 노후생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을 남성은 건강, 배우자, 돈의 순으로 꼽았다. 반면 여성은 건강, 돈, 배우자 순이었다. 특히 돈과 배우자 간의 비율 차가 남성은 1%포인트였지만, 여성은 26% 대 16%로 무려 10%포인트나 됐다.
이쯤이면 남성도 대책을 세워야 할 터인데 돈이 없어도 몸으로 때우며 견딜 틈새는 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아내가 원하는 가사(家事)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이 설문 조사에 따르면 아내가 원하는 가사는 청소 열심히 하고(37%), 음식물 찌꺼기 버리고(12%), 빨래하고(11%), 설거지(9%)하는 것이었다. 여기까지가 마지노 선이지만, 이것도 못하겠다는 강심장은 이 설문에서 '가만히 있어 주는 것'으로 답한 14% 속에 자신의 아내가 포함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수밖에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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