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계의 창] '인빅투스' 경기와 우리 군

추석 연휴에 나는 런던으로 출장을 갔다. 관광 성수기라 세계 각지에서 온 여행객들이 런던 시내를 활보하며 하이드파크와 켄싱턴가든즈에서 모처럼 따사로운 햇볕을 즐기고 있었다. 영국의 신문과 방송은 온통 18일 치러질 스코틀랜드의 분리 독립 국민투표를 연일 톱 뉴스로 보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전혀 들어보지 못한 뉴스가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렸던 바로 그 경기장에서 '인빅투스 경기'(Invictus Games)가 열린다며 국영방송 BBC가 현장 중계를 하고 참가 선수들과의 인터뷰도 연이어 방송했다.

처음 들어보는 인빅투스라는 용어가 낯설어 유심히 살펴보니 전쟁에서 다쳤거나 군 복무 중 병에 걸린 병사들이 참여하는 경기였다. 보통 하계 및 동계 올림픽 직후에 장애인 올림픽이 열리는 게 관례다. 이번의 인빅투스 경기는 영국 찰스 왕세자의 첫째, 둘째 아들인 윌리엄과 해리 왕자가 적극적으로 나서고 영국 국방부가 힘을 합쳐 처음으로 열렸다.

영국과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아프가니스탄 등 13개국에서 모두 400명이 넘는 군인들이 출전했다. 이들은 9월 10일부터 5일간 휠체어 럭비와 농구, 앉아서 하는 배구, 사이클링 경기 등 9개 종목에 걸쳐 기량을 겨루었다.

BBC는 경기에 참여한 각국 선수들을 소개하고 이들이 다친 전투, 그리고 운동을 통하여 자신감을 찾고 재활 의지를 불태우는 모습을 자세하게 화면으로 보여주었다. 국난의 시기에 귀족들이 먼저 전쟁터로 달려가 목숨을 바쳐 싸웠던 영국 문화의 한 단면, 그리고 이런 기조에서 군 복무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군인의 희생을 고마워하는 시민들의 마음을 이 경기를 통해 읽을 수 있었다. 왕실이 이 경기 주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도 있다. 과도한 경비 지출, 잦은 스캔들로 국민들의 비판을 받았지만 국민 통합의 역할을 잘 수행해 왔고 자선사업에 힘쓰는 게 왕실 브랜드 유지에 도움이 된다.

이번에 처음 열린 인빅투스 경기가 앞으로도 계속 열릴지는 불확실하다. 그러나 영국 왕실이 적극 나서고 군의 희생에 대한 고마움을 많은 나라들이 공유함을 감안하면 이 경기는 장애인 올림픽과 유사한 위상을 지닐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군은 어떤가? 험준한 전방 고지와 거친 바다에서, 그리고 산 위의 레이더 기지에서 묵묵히 우리의 안보를 지키는 군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종종 터지는 군대의 구타나 총기사고, 인사비리 등을 볼 때마다 우리 군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진다. 특히 자식을 군대에 보낸 부모들의 시름은 더 커지고, 역시 '군바리'라는 비하 발언에 맞게 민주화의 시대임에도 군은 아직도 복마전인 듯한 인상을 풍긴다. 최근에 터진 윤 일병 구타 살인, 탈영병의 총기 난사, 상명하복을 생명으로 하는 군대에서 이런 심각한 사건 보고 체계의 미비와 그냥 덮으려는 군 수뇌부의 안이한 태도는 군에 대한 신뢰를 크게 떨어뜨렸다.

나라마다 직업으로서 군인, 군에 대한 인식과 신뢰는 매우 다르다. 역사 발전과정에서 군이 수행한 역할에 따라 군에 대한 이미지가 좋거나 나쁠 수 있다.

영국은 제국의 건설과 발전 과정에서 군의 위상이 높아졌다. 영국군에는 잉글랜드인, 웨일스인, 스코틀랜드인 등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근무하면서 서로 알게 되었고 이들은 전투 현장에서 적과 싸우면서 영국인이라는 정체성을 형성할 수 있었다. 찰스 왕세자는 1970년대 5년여 동안 공군과 해군에서 복무했고 해리 왕자도 육사를 졸업하고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조종사로 참전했다.

반면에 우리의 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나빠진 것은 군의 정치개입 때문이다. 민주화 시대에 군의 정치개입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그렇지만 일반 시민들이 군 복무에 대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은 여전히 크다. 돈과 배경이 든든한 사람들의 군 복무 비율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훨씬 낮다는 통계자료가 종종 공개된다.

올해 잇따라 터진 군 사고와 비리를 계기로 우리 군이 환골탈태하여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는 집단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기대해본다.

안병억/대구대 교수·국제관계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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