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이 취업을 위한 수단으로만 사용된다면 이것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문학이 방법이나 수단이 될 때 인문학 본래의 기능을 달성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인문학의 참된 목적은 제대로 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안상헌의 '청춘의 인문학' 중에서)
요즘 내가 무척 당황스럽습니다.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워지고 지금처럼 나를 치켜세운 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서점에서도 내 이름을 내건 책들이 봇물을 이루고 곳곳에서 나를 배우는 강좌가 열리고 있습니다. 대통령도 '앞으로도 인문학 분야 전공자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하면서 나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교육부도 그에 발맞춰 '인문정신진흥계획' 7대 과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초'중등 학생 인성교육 실현을 위한 인문정신 함양 ▷대학 교양교육 개선 및 확산 ▷인문 분야 학문후속세대 육성 및 학술 역량 강화 ▷지역기반을 통한 생활 속 인문정신문화 실현 ▷인문정신문화와 콘텐츠의 융복합 확대 ▷생애주기별 인문정신문화 프로그램의 다양화 ▷인문정신문화 분야의 국제교류 활성화 등이 그것입니다. 그야말로 나를 위한 언어의 향연입니다. 특히 초'중등교육에서는 문'이과 통합 개정교육과정으로의 변화와 맞물려 나의 존재감은 극에 달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나는 진정으로 기뻐할 수가 없습니다. 이러다 다시 관심이 멀어지면 그 허망함이 얼마나 클까 하는 우려 때문입니다. 대학에서 나를 가르치는 공간은 점점 좁아지고 있는데 오히려 사회 전반에서는 나를 중시한다는 것도 이상하게 보입니다. 약 10년 전에도 이런 바람이 거세게 불고 지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표현 그대로 거세게 불고 지나가 버렸더랬습니다. 그건 더욱 비참했습니다. 바람은 곳곳에 생채기를 남깁니다. 나에 대한 관심이 본질적인 것에 머물지 못하고 지엽적이거나 표피적인 것에 그칠 때 나의 상처는 더욱 깊어질 뿐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는 이유는 자신들을 사랑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에 대한 사랑은 자신에 대한 사랑입니다. 요즘 유행하는 교육에 대한 표현들을 들어볼까요? 학교 교육 품질 관리, 교육 서비스, 명품 학교, 명품 교사, 다양한 교육상품, 교육 수요자의 선택권, 우수학생 입도선매…. 다들 어디선가 들어본 말들이지요? 사실 사람들은 나를 사랑하거나 자신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시장만능주의 속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방법으로 나를 선택한 것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나는 시장과 가장 거리가 먼 존재입니다. 나를 들여다보는 데서 출발해 타인을 이해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로 나입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나를 배워야 하는 이유입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길에서 나의 존재를 수단으로만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사람의 본질입니다. 나를 배우고 가르치는 이유는 오히려 시장만능주의로 인해 잃어버렸던 사람의 가치를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시장도 존재하는 것이지요. 나는 사람들의 삶에서 공기와 같은 존재입니다. 내가 사라지면 사람들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곧 사람이니까요. 시장만능주의와 같은 실용적 접근으로는 내가 지닌 존재의 본질에 다가갈 수 없습니다.
나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나를 사랑하기를 간절하게 원합니다. 그것이 나를 위함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을 위함입니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합니다. 사람과 사람을 잇고 싶습니다. 온갖 상처와 반목 속에 살아가는 오늘날 사람들에게 따뜻한 차 한 잔이 되고 싶습니다. 수많은 굴욕과 멸시, 그리고 고통 속에서 걸어가는 존재들에게 시원한 그늘이 되고 싶습니다. 제발 나를 진실하게 사랑해주세요. 그리고 천천히 나와 함께 오랫동안 걸어주세요.
한준희 대구시교육청 장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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