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담학 박사 김미애 교수의 부부·가족 상담 이야기] 아이들과 한편인 아내

◇고민=가장으로 열심히 살던 저는 이제 가족밖에 없다 싶어 아이들과 친하게 지내려고 이리저리 정을 주는데도 애들은 슬슬 피해만 다닙니다. 그런데도 아내는 모른 척하며 보란 듯이 자기들끼리만 오붓이 지내고 있네요. 어떤 때는 집에 가면 애들은 엄마와 웃고 떠들다가도 저만 보면 각자 방으로 사라지고 집은 금세 분위기가 싸늘해지고 정적만 감돕니다. 그 모습을 보면 은퇴 후에 가족이 냉정히 대할 것을 생각하면 외롭고 불안합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하는 아내가 야속해서 말을 걸면 아내가 따집니다. "젊어서 일밖에 모르고 바깥 사람들과 시댁 위주로 살았지, 애들한테 관심 한 번 눈길 한 번 줬냐"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루션=그간 한 가정의 아버지와 남편으로 온 가족이 만족할 정도로 가정을 이끌어 오는 여정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남편들은 대체로 가족을 가장 중요한 존재로 마음에 두고 있지만,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때론 더 급하고 불안한 상황에서 시간과 에너지를 쏟아야만 할 때가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가족을 무시해서가 아니라 가족은 떠나지 않는 위치에서 늘 내 안에 있는 이들이라고 안심을 하고, 내 편이라 너무 편하게 믿고 방심한 결과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가족끼리 이런 과정을 세세히 짚고 소통하지 않고 세월을 지내오다 보면 많은 오해가 쌓이고, 심지어는 가족관계가 단절되는 불행으로까지 치닫게 됩니다.

지금 귀하의 경우도 나름대로는 가족을 위해 헌신하고 아주 열심히 살아왔다고 자부하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아내와 아이들이 인정해 주질 않고 도리어 한편이 되어 꽁꽁 얼어붙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견제하고 있어 불편하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아버지의 마음은 섭섭하고 안타까운데, 특히 아내에겐 분노마저 느껴 다투기만 한다지요. 왜냐하면 아내가 아이들로부터 아버지의 입장을 살려주는 중간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데 그걸 거절하니 말이에요. 도리어 아내는 남편이 지금 와서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다고 일침을 가하고 있네요. 과거 가족에게 사랑조차 준 적이 없고, 도리어 바깥 사람들과 친지에게 더 잘해 온 남편을 아직도 용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 결과, 엄마의 이런 불행한 모습을 지켜본 아이들은 저절로 그녀의 원망이 내재화되어 아버지를 원망하고 가족을 버린 사람 취급을 하고 있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나 귀하가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 억울해하고 속상해하기만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잠시 서로의 빈 의자에 앉아보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지금 앞의 빈 의자에 아내가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그 빈 의자에서 나를 바라보세요. 나같이 일에만 치중하고 가족과 소풍 한 번 가지 못하고 아내와 따뜻한 시간 한 번 제대로 갖지 못한 지난 시간의 발자국들을 말입니다. 하나뿐인 남편이, 하나뿐인 아버지가 가족보다는 친척들을, 가족보다는 이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듯한 오해를 준 '나'라는 사람과 사는 아내의 기분과 아이들의 기분을 느껴 보시길 바랍니다. 만약 '그때, 거기서' 가족들의 기분을 '지금, 여기서' 그 기분을 느낄 수만 있다면, 지금 당장 귀하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되는 화해의 열쇠를 찾게 될 것입니다.

대구과학대 교수 대구복지상담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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