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문소리(40)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자유의 언덕'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의 비중이 큰 걸 알고 나서 놀랐다. '카페 주인 영선 역', 비중이 작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이럴 수가, 영선이 주인공이나 다름없었다. 더욱이 영선은 영어로 의사소통해야 하는 인물이었다.
"감독님 시나리오는 완고로 나오지 않아요. 카페 여주인이라고 들었을 때 분량이 많지 않으리라고 생각했죠. 그런데 유창한 영어도 해야 하더라고요. '카페에 손님이 오면 대응이나 하겠지!' 했는데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어요. 윤여정 선생님이 영어 때문에 고생했다고 하셨는데, 선생님은 외국에서 생활도 하셨으니 제가 더 걱정이었다니까요.(웃음)"
'자유의 언덕'은 인생에서 중요했던 한 여인 권(서영화)을 찾기 위해 한국을 찾은 모리(카세 료)가 서울에 머물며 영선(문소리)과 만나 이어지는 서울 여행기를 담은 영화다. 문소리는 앞서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 '하하하' '다른 나라에서'에 출연하며 홍상수 감독의 작업 스타일에 매료됐다. 그는 홍 감독의 영화에 비중 상관없이 '즐겁게 홍상수의 바다에 빠져들 수 있기 때문'에 참여한다. 이번에도 그런 마음이었지만, 사실 자신의 비중과 영어 대사 탓에 놀라긴 했다고 고백했다. 요즘 말로 '멘붕'이었다. 물론 고생은 아니었다. "홍 감독님 촬영 현장은 고생이라고 할 수가 없어요. 2주간 같이 시간을 즐겁게 보낸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한다기보다는 즐겁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아요. 와이어에 매달리거나 액션을 몇 달 동안 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요. 물론 아침에 대본이 나오고 그걸 1시간 만에 숙지해야 하는 등 긴장감도 있고, 엄청난 순간적인 집중력도 필요하지만 끝나고 나면 '좋은 시간을 같이 보냈다'는 기분이 더 커요. 그 시간이 제게 가르쳐 주는 게 많아서 좋기도 하죠."
홍 감독의 작업 방식을 좋아한다는 문소리에게 이유를 물으니 "가장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시나리오나 촬영이 있는 그대로 진행이 되는 게 별로 없잖아요. 홍상수 감독님은 적은 돈을 주긴 하지만, 영화를 생각하고 만드는 방식, 배급하고 관객에게 다가갈 때까지 모든 과정이 정직하고 솔직해요. 누구의 이익에도 휘둘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잘 빚어서 내보이잖아요. 그런 태도에서 믿음이 가는 거예요. 시나리오가 없다고 해서 믿음이 안 가는 게 아니죠.(웃음)"
단기간에 대본을 외워서 연기해야 하는 건 마치 시험을 보는 것처럼 스트레스일 것 같은데, 문소리는 "생각의 차이"라고 짚었다. "어떻게 될지 모르니 걱정하는 건 당연한 것 같아요. 하지만 스트레스라고 생각하면 더 스트레스가 되는 거예요. 감독님은 괜한 걱정이나 긴장을 안 하게 만들어주세요. 그날 촬영이 끝나면 '편히 잘 자고 오라'는 인사를 하죠. 똑같은 생각도 뒤집어 보면 다르게 느껴져요."
문소리는 "감독님이 배우들을 잘 끌어주고 촬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지만, 배우에게도 홍 감독님 영화에 출연을 결심하는 건 일정 정도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짚었다. "감독님 스타일에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홍 감독님 영화를 하고 나면 자신을 직접적으로 들여다보는 기회가 되는 건 확실하다"고 강조했다.
문소리와 홍 감독의 인연은 깊다.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을 기회로, 이창동'홍상수 감독과 인연을 쌓았다. 두 감독의 작업실이 가까워 자주 찾아가 만났고, 식사도 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 인연이 14년이 넘었다. 그는 "사람을 만나고, 겪게 되면 안 좋은 면도 보이니 존경 안 하게 되지 않나. 홍 감독님을 처음에는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알아갈수록 존경할 수밖에 없더라"고 감탄했다. 생각하는 방식이나 작업스타일 등 모든 방면에서 그렇다.
문소리에게 홍상수 감독이 기용하는 배우들의 폭이 넓지 않은 것 같다는 궁금증도 물어봤다. 주변의 친한 배우들이 홍 감독과 작업을 하고 싶다고 얘기하지는 않을까. 문소리는 "나도 언제 다음 작품을 같이 할지 모른다"며 "어떤 작품인지도 모른다. 갑작스럽게 전화 와 출연 제의를 한다"고 웃었다. "저보다 감독님이 배우 보는 눈이 더 탁월하시니까요. 감독님이 다음 영화를 누구와 할지 저도 궁금하고 또, '누가 캐스팅 됐더라'라는 얘기를 듣는 게 더 재미있어요. 어떤 조합일지 궁금하기도 하고요. 한 가지 느낀 건, 감독님은 그 사람이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보는 것 같더라고요. 속은 알 수 없지만요.(웃음)"
'자유의 언덕'은 일본배우 카세 료가 출연하게 된 것도 화제였다. 일본배우와 첫 호흡, 어땠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카세 료가 일본 사람이라고 느끼는 건 일본말을 할 때뿐이었어요.(웃음) 그만이 풍기는 매력이 있어요. 특별한 매력의 소유자죠. 배우와 스태프 모두 좋아했어요. 예를 들면 사람을 쳐다보는데, 의도가 드러나지 않은 눈빛을 가졌더라고요. 배우로서 그 눈빛이 좋다고 생각해요. 연기에 힘을 주지 않아도, 기교를 부리지 않아도 깊이 있는 느낌으로 연기가 화려하게 느껴지게 만들어줘요. 한국에 있는 동안 홍상수 영화만을 위해 숨 쉬는 것처럼 행동했다니까요. 카세 료처럼 헌신적인 사람은 처음 본 것 같아요.(웃음)"
카세 료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구스 반 산트 등 해외감독들과도 작업했다. 카세 료가 부럽지는 않을까. "다른 문화권 감독과 작업해보는 게 재미있었을 것 같기는 해요. 흥미로워 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제 소망이나 목표는 아니에요. 기회가 되면 다른 문화권 감독과 작업하면 좋겠지만, '어떤 문화권의 감독과 작업하느냐'보다는 '그게 어떤 작품이냐'가 제겐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아직 같이 하고픈 한국 감독님도 많으니까요."
문소리는 지난 7월부터 SBS 예능 '매직아이'에 출연하고 있다. 대중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냐고 물었다. "그동안 우는 모습, 센 모습을 많이 보여줬죠. 심지어 웃는 모습은 보여준 적도 없는 것 같아요. '저 여자는 농담이라는 걸 할 줄 아는 여자인가?'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이미지도 괜찮을 것 같았죠. 사람들이 저를 급진적인 인물로, 또는 지적인 이미지로 느끼는 것도 별로예요. 사실 전 그렇게 지적이지도 않고요.(웃음)" 아쉽지만, 시청률은 높지 않다. "잘 선택했는지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현재는 프로그램이 자리 잡도록 더 도움이 돼야겠다는 생각뿐"이라고 했다. '가수 이효리와 문소리가 잘 어울릴까?'라는 시선들이 있었는데, 두 사람은 꽤 괜찮은 호흡을 보이고 있다. 문소리는 "효리 씨, (홍)진경 씨와도 말이 잘 통하는 것 같아 좋다"고 즐거워했다.
매일경제 스타투데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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