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목요일의 생각] 그렇게 30대가 됐다

올해 초여름, 대학 시절 학보사에서 함께 기자생활을 하던 친구들 중 서울에 취직하거나 살림을 차린 친구들을 서울에서 만났다. 아기 때문에 바깥출입이 쉽지 않은 친구가 있어 집들이 겸 아이도 볼 겸 해서 과일 몇 가지를 사들고 친구네 집을 방문했다.

다들 대구에서 같이 공부하다 서울살이를 시작한 지 5년 안팎인 친구들에게 서울살이는 많이 팍팍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야기의 종착역은 '서로의 건강'이었다. 집주인인 친구는 옆에 놓인 지름이 약 10㎝쯤 되는 반으로 잘린 통나무조각을 보여주더니 "요즘 유행하는 편백나무 베개라는 건데, 이게 요새 허리랑 척추 교정에 그렇게 좋다더라"며 그 통나무조각으로 어떻게 척추를 펴는지 시연을 보였다. 그 뒤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서울 모처에 있는 스포츠마사지숍이 있는데 한 번 마사지 받고 나니 몸이 정말 가벼워지더라"느니 "그곳 가격대가 얼마고 마사지사 선생님이 정말 아픈 데를 딱딱 집어주니 너무 시원하더라"는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대구에서도 스포츠마사지를 받아본 적이 없는 나는 그저 "아, 그래?"라는 말만 연신 할 수밖에 없었다.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만만치 않은 서울살이의 적나라한 모습을 본 것 같아 뭔가 짠하기도 했다. 그래도 '다들 30대 초반인데 너무 엄살 피우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학보사 시절 나보다 밤을 훨씬 더 잘 버티던 친구들이었고, 술도 나보다 훨씬 더 잘하던 친구들이었는데 '서울살이 몇 년 만에 그렇게 훅 가버릴 수 있나?'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나의 생각을 한 번에 잠재워버린 글을 최근에 하나 읽게 됐다. 이 글쓴이는 너무 허리가 아파 정형외과를 가도 한의원을 가도 원인을 찾을 수 없어 '뭐라도 해보자'는 심정으로 집 근처 크로스핏 체육관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체육관 관장이 체성분분석기에 뜬 결과를 보고 던진 "노화입니다"라는 한마디에 뭔가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단다. 결국 인생 처음으로 '살을 빼기 위해서'가 아닌 '건강해지기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운동을 시작했다는데 이 칼럼의 한 문장이 내 가슴을 쳤다. "정말이지, 아프니까 30대였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야 "젊은 것들이 어찌 그 모양이냐" 하실 테지만 지금의 30대 초반은 입시지옥과 취업지옥을 통과해 이제야 허리 한 번 펴려는 순간인데 그때 허리가 삐끗하는 것이다. 다들 20대의 패기는 마음속에 있는데 그 패기를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에 몸이 벌써 삐걱거리는 상황이다. 대기업에 들어간 남자 동기들 이야기를 들어봐도 "군대 가기 전만 해도 전날 술을 미친 듯이 마시고도 다음날 9시 수업에 멀쩡히 들어갔는데 요즘은 그렇게 마시다가는 오전에 일을 못 하겠더라"며 "그렇다고 회사가 사정 봐주지도 않으니 어쩌랴, 일해야지"라는 말이 나온다. 이때껏 만난 친구들 말처럼 어디 한구석은 꼭 삐거덕거리는 부분을 안고 그렇게 30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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