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의 금요일이 묘하다. 비가 오는 처마 밑 담벼락에 딱 달라붙은 남학생이 숨을 크게 들이켰다. 곧 숨이 멎을 듯 그의 가슴이 크게 부풀어 올랐지만 잠시만 참으면 된다. 그래야 그녀의 아름다운 향내를 조금이라도 더 가슴에 담고 있을 수 있다. 그녀의 온 마음에서 풍기는 향기는 그의 코를 통과하더니 금세 넓은 그의 가슴을 가득하게 채웠다. 그의 스무 살 대학은 비 오는 날에도 화창했다.
금요일의 그녀가 웃는다. 안경을 올려다 쓰고 책을 무겁게 들고 어디론가 분주히 가는 그녀를 나도 모르게 따라가고 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 뒤꿈치를 들고 도서관에 도착한다. 그녀가 매번 앉는 자리를 우리는 '지정석'이라고 부른다. 무거운 책을 옆구리에 끼더니 다시 또각또각, 커피 자판기에서 멈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종이컵이 그녀의 이 사이에 끼여지고 코 밑으로 흐른 안경은 금세 서리가 낀다. 신기하게도 입에 컵을 물고 무거운 책을 옆구리에 끼고 안경이 흘러도 결코 떨어지지는 않는 대단한 묘기를 부리며 그녀는 벤치에 가서 앉기까지 한다. 놀랍다. 눈을 감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피곤한 듯 고개를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그녀의 목에서 뚝뚝 소리가 난다. 금요일 도서관은 매주 그녀의 묘기로 신비롭다.
여하튼 여러 날의 금요일이 지나고 2014년 9월 오늘, 그녀는 나의 아이들을 기르고 있다. 그때처럼 그녀는 여전히 금요일인 오늘만 되면 유난스레 묘기를 더 부린다. 도서관 그녀는 세월이 흘러 재주가 더 많아졌다. 손도 안 대고 귀에 전화기를 올려 두고 통화를 할 수도 있고 아이에게 준비물을 챙기라고 호통을 치지만 전화 목소리는 매우 상냥해질 수도 있다. 운전하다 사이사이 화장을 할 수도 있고 이불 빨래를 털어 널 때는 팔이 쫙 벌어질 수도 있다. 문자메시지 보낼 때도 그녀는 엄지의 놀라운 기적을 보여준다.
스무 살의 금요일과 헤어진 후 나는 신기함과 놀라움을 상실했다. 오늘의 금요일은 시무룩하고 우울한 듯 보였다. 시크하고 도회적이라며 열심히 살아서 그렇다고 오늘을 다독여 보았지만 금요일은 쉽게 위로받지 못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시무룩하던 내가 스무 살에게 깜빡 두고 온 금요일을 다시 만나면서 나는 내 아내의 묘기 속 신비로움을 다시 보기 시작했다.
금요일마다 그녀의 상상 속에 나는 람보르기니를 타고 달렸고 금요일마다 그녀의 상상 속에 나는 야릇한 속옷을 입은 섹시한 남자이기도 했다. 살포시 그녀의 눈에 입맞춤하는 나는 낭만가이기도 했었지.
금요일은, 그녀만 쏙 빼간 나에게 서운해하지 않고 내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려준 진국이다. 스무 살 그녀의 묘기가 다시 신비로워진 오늘이 바로 진짜 금요일이다. 금요일이여, 매일같이 영원하라!
<연세아동가족 심리상담클리닉 대표원장>
댓글 많은 뉴스
문재인 "정치탄압"…뇌물죄 수사검사 공수처에 고발
홍준표, 정계은퇴 후 탈당까지…"정치 안한다, 내 역할 없어"
[매일문예광장] (詩) 그가 출장에서 돌아오는 날 / 박숙이
대법, 이재명 '선거법 위반' 파기환송…"골프발언, 허위사실공표"
세 번째 대권 도전마저…홍준표 정계 은퇴 선언, 향후 행보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