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소년 혁명가

일본 에도시대 초기인 1637년 규슈(九州)지역의 시마바라와 아마쿠사에서 대대적인 봉기가 일어났다. 도쿠가와(德川) 막부의 가혹한 천주교 탄압에 대한 종교투쟁의 성격이 강했지만, 농민과 낭인이 합세한 일본 역사상 보기 드문 대규모 반란으로 막부를 큰 곤경에 빠트렸다. 그런데 이 봉기를 조직하고 주도한 인물이 바로 16세 소년이었던 아마쿠사 시로우였다.

세례명이 '제로니모'였던 시로우는 투철한 신앙심에다 막부의 무장 뺨치는 지략과 담력으로 3만 7천 명의 천주교도와 농민연합군을 이끌고 시마바라의 히라성을 함락해 1년간이나 농성하며 혁명을 파급시키려 했다. 소년 혁명가 시로우는 끝내 의연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 여운이 먼 후일 규슈의 하급 무사들로 하여금 막부를 무너뜨리고 명치유신을 단행하는 동인이 되었다는 분석도 있다.

자유당 정권이 부정선거를 획책하던 1960년 2월 28일 대구에서 학생의거가 일어났다. 일요일 열리는 민주당 장면 박사의 유세를 방해하기 위해 당국이 등교 지시를 내리자, 경북고'대구고 등 대구시내 학생 수백 명이 반월당에 모여 독재 타도의 횃불을 든 것이다. 10대의 청소년들이 주동한 이른바 '2'28 대구 학생의거'는 마산의 3'15 부정선거 항의 시위로 이어지며 4'19혁명의 도화선이 된 것이다.

4'19혁명을 촉발시킨 보다 직접적인 계기를 마련한 것도 10대 소년이었다. 시위에 참가했다가 실종된 당시 마산상고 입학을 앞둔 김주열 군이 눈에 최루탄이 박힌 참혹한 시체가 되어 바다에 떠오른 것이다. 이것이 경찰의 소행으로 밝혀지자 민심은 걷잡을 수 없이 폭발했다. 마산과 서울을 비롯한 전국에서 학생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면서 혁명의 불길이 타올랐고, 총칼로 맞서던 이승만 독재 정권은 기어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된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의 2017년 홍콩 행정장관(행정수반) 선거안에 반대하는 홍콩 시민의 도심 점거 시위에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한데 그 주동자 또한 17세의 고교생 운동가 조슈아 웡(黃之鋒)이라고 한다. 그는 중고교 학생운동단체 학민사조(學民思潮)를 이끌며 시위를 주도했는데, '우산혁명'이라는 홍콩 민주화 시위의 별칭도 '경찰의 최루액을 우산으로 막자'고 한 그의 글이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세상을 바꿀 또 한 사람의 소년 혁명가가 탄생하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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