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삶 속에서-초보 농군 귀촌일기] 가을을 위하여

시골길은 대체로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차로 가장자리로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밤길 운전을 할 때 걸어가는 사람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난 뒤, 방금 지나온 곳에 보행자가 있었다는 걸 느낄 때면 식은땀이 흐르고 뒷머리가 쭈뼛거립니다.

시장에서 필요한 물품을 몇 가지 사고 느긋하게 돌아오는 길입니다. 가을이 한창인 요즘 시골길은 눈길 붙잡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도로 양옆으로 벼가 누렇게 익어가는 논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길가엔 꽃을 피운 코스모스와 해바라기, 칸나가 쭉 뻗은 키를 자랑삼아 얼굴을 치켜들고 있습니다. 이제 막 단풍이 들려고 하는 가로수들이 몸살이 난 듯 몸을 비트는 그 위로 하늘빛이 청명합니다. 이런 풍경 속에 조금이라도 더 머물고 싶어서, 집으로 곧장 가는 길 대신 약간 돌아가는 상주 방향의 자동차 도로에 올라 막 속력을 내려고 할 때입니다. 오른쪽 마을길에서 도로로 진입하려는 오토바이 한 대가 도로 사정을 보지 않은 채 멈추지 않고 그대로 달려나오고 있었습니다. 운전자는 앞을 보는 대신 계속 뒤만 보고 있었는데 누군가와 작별인사를 하는 듯했습니다. 한적한 도로 위를 편한 마음으로 달리다가 하마터면 부딪칠 뻔한 상황에서 간신히 브레이크를 밟고 경적을 울리는 제 손과 발이 덜덜 떨립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경적 소리를 듣고 나서야 멈칫했는데 머쓱한 웃음을 띠고 있는 그분은 연세가 들어 보이는 어르신이었습니다. 옆에 타고 있던 남편이 사고 없이 지나와서 다행이라며 저보다 더 가슴을 쓸어내린 순간이었습니다.

하마터면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우리 마을 위에 있는 저수지를 지날 때였습니다. 물빛이 맑게 가라앉은 저수지의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 사람들이, 잠시 차를 세워놓고 바스락거리는 가을의 소리를 들으며 서성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보기 좋아서 차 속도를 늦추고 있는데 앞에서 마주 오던 트럭이 속도를 줄이며 차창 문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꽝" 하는 소리와 함께 제 차와 트럭 사이를 빠져나가는 오토바이 한 대가 있었습니다. 뒤에서 따라오던 오토바이 운전자가 제가 속도를 줄이자 마주 오던 트럭을 보지 못한 채 그대로 앞질러 지난 것입니다. 깜짝 놀란 저는 차를 세웠고, 트럭 운전자는 우리와 아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냥 지나갔습니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나이 어린 학생이었는데 많이 놀랐는지 얼굴이 창백했습니다. 다행히 차체가 조금 긁혔을 뿐 다친 사람은 없어서, 조심하자는 말을 건네고 학생을 보낸 뒤 한참 동안 가슴이 두근거렸습니다. 만약에 오토바이가 넘어지기라도 해서 학생이 다쳤다면 어쩔 뻔했을까요. 생각만 해도 아찔했습니다.

도시에서 운전할 때 가장 무서운 복병은 골목길에서 달려나오는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아직 취학 전의 작은 아이들이 갑자기 차에 뛰어들면 가슴이 덜컥 내려앉습니다. 근처에 있던 아이들 보호자는 차가 급정거하는 소리에 놀라 달려 나와서는, 아이가 다치지 않았는지 살피는 사이 눈을 치켜뜨며 운전자를 노려봅니다. 놀란 가슴을 채 진정시키지도 못한 운전자의 입장에서는 속만 답답할 뿐입니다.

시골은 교통량이 많지 않아서 도시보다는 사고 위험이 적을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사고의 복병은 곳곳에 있습니다. 시골길은 대체로 인도가 따로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차로 가장자리로 걸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밤길 운전을 할 때 걸어가는 사람을 미처 보지 못하고 지나치고 난 뒤, 방금 지나온 곳에 보행자가 있었다는 걸 느낄 때면 식은땀이 흐르고 뒷머리가 쭈뼛거립니다. 밤길에는 되도록 중앙선 가까이로 운전하라는 말이 사고를 대비한 궁여지책이었음을 느낀 순간입니다. 밤에 가로등이 없는 곳에선 차들이 대부분 상향등을 켜고 운행하기 때문에 눈이 부실 때가 많습니다. 반대편에 차가 지나가면 상향등을 꺼주는 운전자도 있지만 그대로 무심하게 지나가는 운전자도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순간적으로 앞이 보이지 않아 사고의 위험을 느낍니다. 농번기에는 경운기나 트랙터가 앞에서 가고 있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이럴 경우엔 어쩔 수 없이 중앙선을 넘어 추월해야 하는데 반대편에서 차가 계속 달려오면 속수무책으로 마음을 태웁니다. 갓길이 없는 편도 1차로 도로에서 트럭을 세워놓고 작업을 하고 있는 경우에도 중앙선을 넘어갈 수밖에 없는데 이런 일들이 여간 신경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시골이든 도시든 사고의 위험은 늘 방심 뒤에 숨어 있었습니다. 오늘 일은 그동안 느슨해졌던 저의 경각심을 높이기에 충분했습니다. 아름다운 풍경 뒤에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도사리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운전대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갑니다. 가을이 가을로 여전히 아름답기 위해서라도 도로 위에서의 방심은 버려야겠다고 마음먹습니다.

배경애(귀촌 2년 차'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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