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부 내외) 다리를 붙여주며 제비를 정성껏 보살핀다. (제비) 큰절 올리고 가방에서 박씨를 꺼내 떨어뜨리고 하트 날리며 퇴장한다.
흥부: (박씨를 주으며) "박씨구먼! 아이고, 고맙다고 박씨를 줬나 보네. 여보, 우리 이 박씨 심어서 정성껏 키웁시다." (아내 어깨에 손을 올린다)
8일 칠곡군 북삼읍 어로1리 마을회관에 모인 성인문해교실 보람학당 학생들은 연극 '흥부네 박터졌네' 연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60대 중반부터 80대에 이르는 보람학당 여학생(?) 15명은 며칠 뒤 대구 초청공연에서 행여 대사 한마디라도 틀릴까 봐 대본을 뚫어져라 바라본다.
대다수 국민들은 한글은 과학적이고 독창적이며, 무척 배우기 쉽다고 한다. 흔히 알려져 있기로 '한글은 발음기관과 천지인(天地人)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 독창적이고 과학적이며, 표음문자여서 한자나 영어 등과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우수하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한글이 얼마나 배우기 쉬운 문자인지는 칠곡군 성인문해교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보람학당이 지난해 3월 문을 열 당시만 해도 참가자 15명 중 절반이 한글을 전혀 몰랐다.
9개월 후인 그해 11월 '낫 놓고 기억 자도 모르던' 학생들은 연극 대사를 줄줄 읽고 외우게 됐다. 19개월이 지난 지금은 대구에서 연극 초청 공연까지 할 정도가 됐다.
칠곡군에는 성인문해교실 14곳이 운영 중이다. 왜관읍 매원리는 '매원배움학교', 금남리는 '매봉서당', 기산면 영2리는 '한솔배움터', 북삼읍 숭오2리는 '금오학교' 등 이름은 제각각이지만, 한글을 깨치지 못한 사람들이 이곳을 거치며 '까막눈'의 설움을 털어내고 있다.
보람학당 최귀남(65) 씨는 "가정 형편 탓에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도 채 마치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뒀다. 결국 지금까지 제대로 글을 모르고 살았다"며 "은행에 가서 이름을 제대로 쓸 수 없을 때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 못 배운 것이 평생의 한이 됐다. 하지만 한글을 배우고 난 뒤부터는 당당해졌다. 이젠 연극 대본을 읽을 수 있고, 딸에게는 편지도 쓴다"고 했다.
장병학(78) 씨는 "막내딸로 태어나 공부를 못했다. 먹고살기 바쁘다 보니 글 배울 시기를 놓쳤다. 이제 글을 알고 나니 세상이 다시 보인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이런 모든 성과는 2년도 채 안 돼 나타난 것이다. 지난달 25일 경상북도 평생학습박람회에서 자작시 '나의 인생'을 낭독, 김관용 경북도지사를 감동시킨 최영순(72'북삼읍) 씨도 마을회관 성인문해교실에 찾아온 '한글 선생님'을 통해 글을 깨쳤다. 지난해 대구시교육청 시행 제1회 중학교 입학 검정고시에서 최고령 합격의 영예를 안은 허원순(77'왜관읍) 씨도 늦깎이 공부를 했다.
보람학당 황인정 교사는 "할머니들의 한글 익히는 속도가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고 있다. 이젠 한글뿐 아니라 연극, 시 쓰기, 글짓기 등도 하자며 할머니들이 조른다"고 했다.
칠곡 이영욱 기자 hell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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