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밥 한번 먹어야지?" "그래, 밥은 먹었고?"
우리 민족은 항상 '밥'을 매개로 소통한다. 시간을 나타내는 '아침'과 '저녁'은 유독 한국에서만 먹을 수 있는 명사로 돌변한다. 그만큼 우리에게 밥은 중요하다. 하지만 시간에 쫓기고, 일에 쫓기는 요즘 가족이 모여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기 어렵다. 갈수록 늘어가는 싱글족의 밥상은 더 외롭다. 계란 프라이와 김, 쌀밥으로 구성된 1인상은 영양가보다 속도가 기준이다. 외식이 일상이 됐다고 해도 메뉴는 창의적이지 못하다. 회식은 고깃집, 데이트는 파스타집, 맥주 모임은 치킨집이다. 그래서 엄마의 정성과 따뜻함이 담긴 집밥이 더 그리워진다. 이러한 현대인들의 마음을 읽은 '집밥 카페', 한국 가정에서 집밥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을 외국인에게 파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지금은 집밥을 소비하는 시대다.
직장인 이모(30) 씨는 자취 생활만 10년 차다. 대학 때 집을 떠난 뒤 지금까지 줄곧 혼자 살아왔고, 언제 할지 모를 결혼 전까지 계속 혼자서 살 예정이다. 그런 그에게 사람들은 묻는다. "혼자 오래 살아서 요리 잘하겠네?" "네, 뭐" 대충 말을 얼버무린다. 그들이 이 씨의 냉장고를 열어본다면 질문이 달라질 것이다. 예전보다 집은 더 넓어졌고, 더 많은 가구가 집의 빈 곳을 채우고 있지만, 냉장고는 갈수록 더 비어간다. 김치는 고사하고, 된장과 고추장도 없다. 명란젓갈과 멸치볶음, 가까운 반찬 가게에서 산 마른반찬 몇 가지가 전부다. 야채나 반찬거리를 다 먹지도 못하고 버리는 일이 많아지자 이제 아예 냉장고를 채우지 않는 쪽을 택했다. 이 씨는 "아침에는 시리얼과 우유나 과일로 간단히 해결하고, 점심과 저녁은 밖에서 먹고 돌아온다. 스파게티집도, 회식 때마다 가는 삼겹살집도 지겹다. 엄마가 해주는 밥이 먹고 싶을 뿐"이라고 씁쓸해했다.
황수영 기자
◇집밥이 그리울 때-집밥 카페 1 혼자 사는 젊은 층 "분위기도 함께"
'집밥'을 그리워하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 전통 한정식집은 부담스럽고, 분위기가 나지 않는 밥집은 싫은 젊은 층을 겨냥한 '집밥 카페'들이 도심 곳곳에 문을 열고 있다. 대구 수성구의 한 아파트단지 상가 1층에 있는 '카페 동이'는 카페가 아니라 밥집이다. 메뉴판에 적힌 '시래기불고기' '무국' 등을 보면 이곳의 정체를 알 수 있다.
올해 2월 문을 연 이곳은 형제가 함께 운영하는 '한식브런치카페'다. 음식에서 깊은 손맛이 느껴졌는데 주방을 책임지는 사람은 20대 남성이다. 동생인 남혜동(27) 셰프는 한식 카페의 출발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 외식하면 한 달에 한 번, 거하게 먹는 경우가 많았지만 요즘은 외식이 일상이잖아요. 외식은 잦은데 제대로 된 밥 한 끼 먹기가 어려워요. 한식을 먹으려면 한정식집, 백반집, 국밥집에 가야 하지만 제 나이와 비슷한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분위기는 아니죠. 그래서 카페처럼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분위기에서 제대로 된 밥을 팔아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형인 남해용 씨가 가구점을 운영했던 자리를 식당으로 변신시켰다. 남 셰프는 레스토랑 컨설팅 업체에 근무하며 한식 요리를 틈틈이 배웠고, 스스로 메뉴를 개발했다. 혼자 오는 손님을 위한 바도 있다. 메뉴는 단순하다. 8천원짜리 '오늘의 밥상'을 손님들이 가장 많이 찾는데 매일 메뉴가 바뀐다. 이날은 불고기와 상추 샐러드, 두부, 계란 프라이가 한 그릇에 담겨 나왔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 이곳을 찾는다는 김진아(28) 씨는 "나는 밥이 좋다. 브런치라고 해서 꼭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을 필요는 없지 않냐"며 "혼자 점심을 먹어야 할 때 여기 바에 앉아서 자주 밥을 먹는다"고 말했다.
◇집밥이 그리울 때-집밥 카페2 된장찌개·고구마조림 '엄마 손처럼'
대구 중구 문화동에는 엄마의 마음을 담은 집밥 카페가 있다. 찾는 과정부터 쉽지 않았다. 좁은 골목을 몇 번 잘못 들어갔다가 겨우 찾았다. 밥집이 밥집처럼 생기지 않아 보고도 지나쳤던 것이다. '밥앤드'(밥and)의 인테리어는 요즘 유행하는 파스타집 같다. 하지만 메뉴판을 보면 비빔밥과 된장찌개, 소불고기, 부추잡채 등 지극히 토속적이다.
이 식당이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1월. 고등학생 자녀를 둔 김현희(45) 씨가 정갈한 음식을 만드는 주방장이자 사장이다. "원래 가게 주변에서 주차장을 운영했어요. 주변 사람들과 식사를 하러 갈 때마다 갈 만한 밥집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남편과 아이 밥상을 차리는 것처럼 내가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은 거죠."
이날 주문한 음식은 표고버섯밥과 부추잡채. 반찬으로 나온 김치와 고구마 조림, 으깬 감자조림에서 주인장의 정성이 묻어났다. 김 씨는 "커피숍이나 양식집이라고 오해하고 들어왔다가 밥을 드시고 가는 분들도 계신다. 혼자 오는 여성 고객도 있고, 20, 30대 젊은 손님도 많이 오는 것이 일반 밥집과 차이점"이라고 설명했다.
황수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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