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사 프리즘] 내부 고발과 정신적 '님비' 현상

연예인 김부선 씨가 언론의 뜨거운 조명을 받고 있다. 자신의 아파트에서 발생한 난방비 비리를 고발하고 폭로한 일 때문이다. 김 씨는 2년 넘게 끈질긴 자료 수집 활동을 벌이고 외부 도움을 받아 500여 세대 중 128가구가 몇 년 동안 겨울철 난방비를 전혀 내지 않은 사실을 밝혀냈다. 이 문제로 아파트 주민들과의 갈등이 생기고, 몸싸움 사태로 이어지기도 했다.

김부선 씨의 용기 있는 행동에 많은 국민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다른 아파트도 점검에 나섰고, 비슷한 문제가 연이어 밝혀지고 있다. 그러나 칭찬과 격려는 잠시일 뿐 내부 비리를 알린 대가로 김 씨는 여러 가지 고통에 시달린다. 몸싸움 상대방으로부터 폭행 혐의로 고소를 당했고, 난방비를 내지 않은 주민들도 김 씨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벼른다고 한다.

구성원이 조직 내부의 비리나 불법 행위를 밖으로 드러내는 것을 '내부 고발'이라고 하는데, 지난해 미국 국가안보국(NSA)의 무차별적 개인정보 수집과 감시를 폭로한 에드워드 스노든의 고발이 유명한 세계적 사례다. 우리 사회에서도 내부 고발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4대 강 사업은 대운하 계획'이라고 양심선언을 한 김이태 박사, 군납 비리를 고발한 김영수 해군 소령, 총리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을 폭로한 장진수 주무관이 최근의 대표적 내부 고발자들이다.

이러한 내부 고발자들은 모두 큰 고통을 받는다. 조직에서 강제 퇴출을 당하고, 배신자로 낙인찍혀 동료들로부터 극심한 집단 따돌림의 대상이 된다. 조직을 위험에 빠트리고 구성원들의 안온한 삶을 위협하는 적으로서 미움을 받는다. 명예 훼손자, 비리 전력자로 몰려 법적 괴롭힘을 겪는 일도 많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조직 내부의 심각한 비리와 불법 행위를 보고도 대부분은 침묵하거나 모른 체할 뿐이다.

내부 고발 또는 고발자를 바라보는 우리 사회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한편으로는 고마워하고 남다른 강한 의지와 용기를 칭찬한다.

그러나 막상 고발자가 자기 조직의 구성원이라면 사정이 달라진다. 굳이 왜 나서서 분란을 일으키고 남들을 힘들게 만드느냐는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기 일쑤다. 한마디로, 다른 조직의 내부 고발은 좋거나 나쁘지 않지만 내가 속한 조직의 치부를 까발리는 내부 고발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기적 태도가 널리 퍼져 있다.

내부 고발을 바라보는 이러한 태도를 '정신적 님비 현상'이라고 부를 수 있다. '님비(NIMBY)'란 'Not In My BackYard'를 줄인 말로 '내 뒷마당에는 안 된다'는 뜻이다. 곧 쓰레기 매립장, 핵폐기물 처리장, 교도소 등 위험 또는 혐오 시설을 자신의 지역 안에 설치하는 것을 반대하는 것이다. 그런 시설이 공익을 위해서는 필요하다고 보면서도 우리 지역에 들어오는 것은 결사적으로 반대하는 집단 이기주의 현상이다. 내부 고발도, 공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조직'의 비리를 드러냄으로써 결과적으로 '나' 에게 불이익이 올 수 있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정신적 님비 현상이다.

조직과 사회는 빛과 소금의 역할을 떠맡은 내부 고발자의 고뇌와 결단으로 한 걸음 한 걸음 진보해 왔다. 나 홀로 격리되고 집단 보복의 대상이 된다는 두려움을 이겨낸 채, 내부의 크고 작은 비리를 드러낸 사람들의 희생이 있기에 조직이 더 크게 부패하지는 않는다. 잘못을 눈감지 않고 잘못이라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들 덕분에 사회 정의가 이나마 유지될 수 있다. 따라서 탈법과 비리가 일상화된 조직과 사회일수록 내부 고발은 더 장려해야 하고, 내부 고발자에 대한 강력한 법적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내부 고발자를 칭찬하지는 못할망정 따돌리고 괴롭히는 조직과 사회의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위험, 혐오 시설에 대한 거부 반응보다 정신적 님비 현상이 우리 사회의 정의를 좀먹고 발전을 가로막는 더 해로운 일이다. 집단 비리를 보고도 폭로할 용기는 없는 대다수의 우리들, 지금 우리 주위에서 양심적 행위 때문에 고통받고 있는 내부 고발자를 함께 지켜나가려는 작은 용기 정도는 내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정복/대구대 교수·국어국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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