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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 읽어주는 남자] 지명으로 읽는 대중가요(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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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가요에 등장하는 '지명'(地名)은 마치 '낡은 서랍' 같다. 그 안에 편지 고이 접어 넣어 두면 훗날 다시 꺼내어 기억 내지는 추억으로 읽으니까. 이를테면 현인은 '비 내리는 고모령'(1948)이라는 편지를 고모령(현재 대구 수성구 만촌동)이라는 서랍 안에 넣어 뒀다. 고모령은 20세기 한국 격동기에 수많은 부모와 자식이 이별을 겪은 곳이다. 숱한 청춘들이 일제강점기에 징병 및 징용당했고, 이후에는 먹고살기 위해 또 꿈을 찾아 고향을 떠났다. 이들이 남긴 사연과 사연을 모아 응축한 노래인 비 내리는 고모령은 그 어떤 역사 기록도 할 수 없는 역할을 해낸다. 그때 그 시절 애환의 정서를 구슬프고 애잔한 창법과 연주, 그리고 노랫말로 전하는 것이다. 현인은 노래한다. 고모령은 눈물 젖은 인생 고개였다고.

◆현대인의 도피 욕구 담는 대중가요

사실 대중가요 속 지명은 현대인의 도피처를 가리키는 경우가 많다. 20세기부터 아파트, 사무실, 교실, 지하철, 버스에 매일 갇혀 살게 된 현대인들은 그만큼 어디론가 떠나려는 욕구가 강해졌다. 이를 반영하듯 조영남의 '도시여 안녕'(1991)과 클론의 '도시 탈출'(1997) 등 제목부터 후련한 탈출감을 느끼게 해주는 곡들이 적지 않게 등장해 인기를 끌었다.

주목할 만한 곡이 하나 있다. 김현철의 '춘천 가는 기차'(1989'사진)다. 소설가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1964)이 안개도시 무진으로 도망치듯 떠난 한 중년의 감정과 심리를 빼어난 문체로 묘사한다면, 춘천 가는 기차는 일상에 지친 현대인이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경춘선 기찻길 위에 감미롭게 풀어놓는다. 뛰어난 보컬은 아니지만 김현철의 목소리에는 편안한 정서가 녹아 있고, 김현철식 퓨전 재즈는 발라드와 포크 등 우리 가요가 쌓아 올린 전통적인 감수성을 완성도 높게 소화해낸다. 이후 김현철은 연주곡 '횡계에서 돌아오는 저녁'(1993)을 발표한다. 횡계는 강원도 평창에 있는 지명이다. 이 곡은 춘천 가는 기차에 이은 도시 탈출기 퓨전 재즈 연작으로 볼 수 있다.

이 밖에도 현대인들의 도피 욕구는 다양한 모습으로 대중가요에 반영됐다. 밴드 '동물원' 출신 김창기의 '강릉으로 가는 차표 한 장을 살게'(2003)는 도피를 갈망하지만 실행하기 어려운 현대인들의 안타까운 처지를 노래한 곡이다. 노랫말은 차표를 구입했지만 실제로는 떠나지 못해 그저 차표를 수첩 속에 모을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자우림의 '일탈'(1997)은 '아파트 옥상에서 번지 점프를,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이라며 도시 안에서 도피 욕구를 해소하는 내용이다.

포크 뮤지션 송창식은 동해 바다로 떠나는 영화 '고래사냥'(1984)의 주제가로 같은 제목의 곡을 발표한다. 그런데 원작 영화에서 이 곡의 숨은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계속)

황희진 기자 hh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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