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동호동락-동굴탐험] 내가 경험한 첫 동굴-성주굴

필자가 미개방 동굴(천연상태의 동굴)을 처음 접한 것은 대학교 동아리를 통해서였다. 영남대학교 '탐험대'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동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되었다.

성주굴은 문경 호계면 별암리에 위치한 동굴로 총연장 약 600m이다. 성주굴은 황티기굴, 호계굴 등의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성주굴에 처음 들어간 것은 2002년이었다. 처음 동굴에 들어갈 때의 흥분과 두려움은 10년이 훨씬 지난 아직까지도 잊히지 않는다. 성주굴은 수직 구간이 있는 동굴이다. 수직 구간이 있는 동굴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동굴장비(헬멧, 헤드램프, 장갑, 동굴복 등) 외에도 등강, 하강 장비가 필요하다. 동굴 입구까지 가려면 동굴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GPS 장비가 흔하고, 스마트폰으로도 운용이 가능하기 때문에 미리 입력해 둔 좌표를 따라가면 된다. 하지만 예전에는 해당 동굴을 먼저 다녀온 사람의 설명이나 자료, 근처 주민들에게 물어 찾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동아리에서 매년 동굴 탐사를 했기 때문에 찾굴(동굴입구를 찾는 행위, 또는 찾음)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길이 희미하고, 관목과 덤불을 헤치고 동굴 입구를 향해 산으로 오르는 것도 흔한 경험은 아니었다. 그렇게 20분간 산행하여 입구에 도착하니 우리를 맞이한 것은 수직으로 입을 벌린 성주굴이었다. 거기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했다. 훈련을 통해 로프를 이용한 등강과 하강을 배우긴 했지만, 캄캄한 어둠 속으로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겁이 덜컥 났던 것 같다.

입구 부분에는 철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다리를 내려가니 주민들이 기도하기 위해 피운 양초와 술병, 정화수를 떠 놓았던 흔적들이 여기저기 보였다. 거기서부터 50m쯤을 다시 비스듬히 내려가니 까마득한 낭떠러지가 나왔다. 수직으로 30m, 아파트 10층 높이를 로프 한 가닥에 의지해 내려가야 했다. 탐사가 끝나면 다시 등강기를 써서 올라와야 했다. 미리 훈련은 했지만 막상 내려가려니 눈앞이 캄캄했다. 깊은 밑바닥을 보니 기분이 더 착잡했다. 내려가야 하는 걱정도 있었지만 10층 높이를 다시 올라와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었다.

로프를 묶을 큰 석주(석회동굴에서 종유석이 자라 석순과 닿아 생긴 기둥)를 확보한 후, 침착하게 하강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로프에 하강기를 장착한 후 천천히 손을 풀어 내려갔다. 산에서 하강을 한 적은 있었어도 땅속에서, 더 깊은 땅속으로 들어가다니…. 참으로 신기하면서도 경건하고 엄숙한 분위기였다.

아무도 없는, 극도로 조용하고 캄캄한 곳, 스륵~ 사라락~ 로프 스치는 소리만 들린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커다랗고 아주 깊은 우물에 줄을 타고 내려간다고 상상하면 비슷할 것이다. 그렇게 하강을 끝내고 더 이상의 수직구간이 없기에 안전벨트와 등강에 필요한 장비는 하강이 끝나는 지점에 정리해 두고 본격적인 동굴탐험을 시작했다.

동굴탐험은 단순한 놀이가 아니다. 학술활동의 의미가 포함된 활동이기 때문에 동굴 안의 여러 주변환경을 관찰하고 기록했다. 동굴 안의 온도, 습도, 주변에 생성물(종유석, 석순, 석주, 석화 등)을 비롯해 박쥐, 꼽등이, 쥐며느리 등 생물도 관찰하고 기록해야 한다.

동굴탐험을 하면서 느낀 점은 '길이 길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편안하게 서서 도보로 장애물 없이 걸어다닐 수 있는 구간은 많지 않다. 대부분 바닥을 기고, 좁은 구멍을 통과하고, 벽을 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 온몸을 사용해서 비비고, 움직여야 탐험이 가능하다. 성주굴의 경우도 두 발로 걷는 구간과 네 발로 기어가는 구간의 길이가 비슷했다. 그렇게 해서 동굴의 막장(동굴에서 가장 깊숙한 곳)에 도달해 모두 헬멧에 장착된 램프(전등)를 껐다. 입도 다물고 숨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렇게 완전한 어둠과, 완전한 고요함 속에서 5분간 명상을 했다. 그렇게 있으니 내가 우주의 일부가 된 듯하고, 시간 또한 멈춰버린 듯했다. 완벽한 어둠과 완벽한 정적…. 동굴 밖 세상에서는 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그렇게 4시간여의 탐험을 마치고 다시 하강했던 장소로 와 장비를 착용하고 올라갈 준비를 했다. 올라갈 때는 힘이 필요했다. 10층 높이의 절벽을 등강기(주마)라는 도구를 이용해 로프 한 가닥을 타고 올라가야 했다. 물론, 손을 뗀다고 떨어지지는 않는다. 등강기는 로프에 설치한 후 위로 올리면 쉽게 올라가지만, 매달려 아래로 힘을 주면 내려가지 않고 정지하는 장비다. 이것을 최소 두 개를 이용해 '딛고 일어나고, 매달리고'를 반복하며 로프를 타고 올라갔다. 계단을 오르거나, 사다리를 오르는 것보다는 확실히 힘들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30m 등강을 마치고 장비를 정리했다. 입구 부근 사다리에 도착했다. 계속 캄캄한 동굴 속에만 있어 시간 개념이 없었는데, 동굴 입구를 통해 비치는 햇빛을 통해 '아~ 아침이구나'를 느꼈다. 시계를 보니 8시간이나 지나 있었다. 사다리를 오른 뒤 산새들의 울음소리와 함께 큰소리로 외쳤다. "탈굴!"

◆글을 시작하면서

탐험한 동굴을 정리하면서 느낀 것은 우리나라에도 동굴이 많다는 것이다. 학술적 가치가 높은 동굴도 있고, 종유석이 아름다운 동굴, 기이한 동굴 등 다양하다. 신비스러운 모습을 땅속 깊숙이 감추고 있는 세계를 먼저 본다는 스릴도 있었다. 아직 개발되지 않는 관계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아 위험하기도 했다. 신비스러운 땅속 세계를 주간매일 독자와 함께 다시 동굴을 탐험한다는 생각으로 다시 들여다보고 당시 기억을 들춰내 생동감 있게 전하려 한다.

김재민(대구산악연맹 일반등산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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