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경제발전을 위해 노동자의 권리가 처참하게 짓밟히고 있던 시절, 그래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것조차 죄악시되었습니다. 당시 고 김수환 추기경은 강화도의 심도직물㈜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하던 가톨릭 노동청년회(JOC) 회원들의 부당한 해고에 대항, "강화본당 신부와 노동자들의 정당한 활동을 지지한다. 인간 기본권은 어떤 이유를 막론하고 수호되어야 하기 때문에 주교들은 부당한 노사관계를 개선하는 데 적극 노력할 것이다"는 성명을 발표하였습니다. 성명 발표 6일 후 해고자들이 전원 복직되었고, 강화직물협회는 해명서를 발표하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 수단의 남부 오지 마을 톤즈, 부족 간 분쟁으로 유혈사태가 끊이지 않은 곳,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땅. 이태석 신부는 그곳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만나고, 전쟁으로 상처받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치고, 지식보다 사랑을 가르치는 학교를 지었습니다. 그는 말기암 판정을 받고도 자신의 치료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톤즈로 돌아가서 파다만 우물을 파야 한다고 했지만, 그토록 원하던 톤즈로 돌아가지 못하고 선종하였습니다.
올해 가을 대구역 건너편 교동시장 끝자락에 위치한 '요셉의 집', 회색빛 수도복을 입은 수녀들과 앞치마를 두른 봉사자들이 곧 들이닥칠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미 문 앞에 줄을 선 손님들은 100원짜리 동전을 만지작거리며 한 끼의 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윽고 식당 문이 열리자 손님들은 고봉밥을 받아 한 끼를 때우고 가져온 검은 비닐봉지에 남은 밥을 담아 나갑니다.
올해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 4박 5일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기에도 벅찬 시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교황은 위안부 할머니들과 장애인들, 그리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만났습니다. 그분은 "한국 방문 기간 내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실종자들, 그리고 그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잊지 않았다"고 했으며, 로마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도 노란 리본을 달고 있었습니다.
올해 10월 저녁 대구 변두리에 있는 조그마한 성당의 회합실, 머리가 희끗한 60대 남성 대여섯 명이 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평범한 신자들이지만 밝은 얼굴로 각자 지난 일주일간 자신들이 행한 선행을 보고하고 있습니다. 한 분은 입원한 사람을 찾아갔고, 다른 분은 홀몸노인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주었고, 어떤 분은 이웃을 위해 차량 봉사를 했다고 보고하고 있습니다.
위의 장면들의 주인공은 다르지만 하나같이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모습들입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들입니까?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고 약자의 희생을 통해 강자가 더욱 강해진다면 세상에는 희망이 없습니다. 반면 강자가 약자를 돕고, 약자를 위해 봉사한다면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세상, 희망이 살아 있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분명 부자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강자는 약자를 위해, 배운 자는 못 배운 사람을 위해, 권력자는 백성을 섬길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약자 보호법(탈출 22, 20-26)을 주셨고, 예수님은 당시의 권력자들과 배운 사람들을 찾아가신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이방인들, 세리와 창녀들을 찾아가셨습니다. 이렇게 가난한 자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가난한 자들이 어떤 특혜를 받을 권리가 있어서가 아니라, 이들의 가련한 처지에 대한 자비로우신 사랑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본받아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우선적 사랑을 실천하여 참으로 멋지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갔으면 좋겠습니다.
대구 비산성당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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